대원사계곡은 옛날에 가야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피난을 가면서 지나간 왕등재의 초입이고
선비들이 천왕봉에 오르기 위하여 지나간 유람길이며
지리산 빨치산의 아픈 이야기가 배여있는 등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피난처나 은거지로 삼아 애환과 격동을 겪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만큼 속이 깊고 갈래가 많은 계곡으로
계곡길 탐방로 조성으로 사람들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계곡경관과 산촌마을 풍경
그리고 유서 깊은 대원사 사찰경관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0:30 트레킹 시작
유평마을까지는 3.5km인데, 오늘은 산악회에서 시간을 충분하게 주어 새재마을까지 갔다가 올 작정이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염천의 날씨지만 시원한 물소리로 마음속을 씻으니
머리속은 무념무상에 빠지며 눈과 귀와 코로, 온 몸으로 살아있음의 행복속에 젖는다
대원사가 가까워지자 잠시 계곡길을 벗어나 도로 옆 보도를 캔딜레버로 확장,조성한 길을 따라 간다
11:01 대원사 일주문
방장산 대원사라고 현판이 걸려 있다
방장산(方丈山)은 지리산의 옛 이름으로
방장(方丈)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매우 크고 넓은 공간을 말하는데
방장산은 ‘매우 넓고 깊은 산’이라는 뜻이다
11:08 대원사(大源寺)
대원사(大源寺)는 해인사의 말사로,
서기 548년(신라 진흥왕 9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과 여순사건 때 화재로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 법일(法一)스님이 다시 세웠고
언양의 석남사(石南寺), 충남 수덕사의 견성암(見性庵)과 더불어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대웅전 옆에 오래된 배롱나무 거목이 있는데 미쳐 사진에 담지를 못했다
대원사는 성철스님이 불자가 되기 전에 수행하던 곳이다
인근의 산청군 단성면 출신인 이영주는 23살 때 이곳 대원사에 들어와 수행을 하다가
해인사에 가서 성철스님이 되었다
대원사 인근 산등성이에는 당시에 명상을 하던 좌선대가 있다고 한다
보물 제1112호인 대원사 다층석탑과 사리전
다층석탑은 신라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다층석탑은 지리산 3대탑 가운데의 하나로
대원사 다층석탑은 동탑이고, 법계사의 탑은 중탑, 화엄사의 삼층석탑은 서탑으로
일년에 두 차례씩 세 탑에서 각각 나온 서광이 허공에서 만나
오색무지개 빛을 비춘다는 영험담이 오래토록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사리전(舍利殿)
대운사의 선원(禪院)인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다층석탑 앞에 있어
선원의 이름을 사리전 또는 탑전(塔殿)이라 부른다
대원사 주위에는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과 관련된 지명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구형왕이 피난을 가면서 지나갔다는 왕등재, 소와 말의 먹이를 먹였다는 소막골,
그가 넘었다고 하는 왕산(王山)과 망을 보았다는 망덕재, 군량미를 저장하였다는 도장굴 등이
오늘날까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산청의 왕산 자락인 산청군 금서면에는 구형왕릉과 구형왕이 패망 후 칩거하였다는 수정궁터가 있으며
왕림사(王臨寺)와 함께 구형왕의 증손자인 신라 김유신이 어린 시절
자신의 증조부인 구형왕의 무덤 앞에서 수 년간 시묘살이을 하며 활쏘기를 연마하였다는
‘김유신 사대비(射臺碑)’도 있다
대원사를 벗어나 방장산교를 건너면서 다시 계곡길로 접어든다
길이 58m 방장산교는 전국 국립공원 탐방로에 설치한 교량 중 가장 규모가 크지만
유려한 곡선 처리로 자연경관과 잘 조화되고 있다
11:34 용소(龍沼)
용이 100년간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바위가 뚫려서 굴처럼 된 것으로 항아리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깊이는 약5m 정도라고 한다
11:46 옛 가랑잎 초등학교
1994년 폐교되었지만 한때 유평마을의 꿈과 희망이 새겨진 유일한 학교였다
1960년 당시에는 학생수가 100명이 넘을 정도였는데
한 신문기자(작고한 전 국제신문의 최화수 논설위원)가 가을운동장의 정겨운 낙엽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가랑잎 초등학교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11:50 유평마을
유평리는 유평, 외곡, 삼거리, 중땀, 아랫 새재, 윗 새재 등 6개 마을을 아우르는 행정구역 명칭이다
대원사를 지나 첫 번째 만나는 마을인 유평은 밤밭골, 즉 율전(栗田)인데 율전이 유평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정권 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산간마을과 외딴집을 없애고 독가촌을 만들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대원사를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유람객들이 꼭 쉬거나 묵어가는 곳이라고 하여
유두류촌(遊頭流村)으로 불리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겉으로 보기엔 한산하기만 하다
유평마을에 왔는데, 2012년 8월 27일 지리산 화대종주 마지막 날
하산식을 한 ‘무릉도원'을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어 이리저리 살펴보니 길가에 안내 이정표가 보인다
뙤약볕 아래 가파른 오르막길 150여m를 땀 뻘뻘 흘리며 힘들게 올라가니 드디어 무릉도원이 나온다
치밭목 산장에서 무재치기 폭포를 지나 유평마을로 하산하는 하산길 첫 번째 집이다
2012년 8월 27일 그날의 감격적인 영상을 리뷰해 본다 ▲▼
주인장이 출타중인지 비어있는 산장에는 개 한마리가 저도 무료했던지 꼬리를 흔들면서 짖어대고 있다
유평마을에서 새재마을까지는 도로를 따라 약3km를 더 걸어야 하는데
이 삼거리마을에서 그만 오른쪽으로 길을 잘못 접어들고 말았다
왼쪽 길 보다 오른쪽 길이 더 넓어 보이기에 무심코 따랐는데 낭패를 초래하고 말았다 ~~~
12:18 삼거리 마을
12:35 그렇게 삼거리마을에서 20여분 올랐는데도 마을이 보이지를 않아
그제서야 카카오맵으로 검색을 해보고 잘못된 것을 알았다
땀을 많이 쏟아내다보니 옷은 항상 흠뻑 젖어있는 상태라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폰이 땀속에 잠겨버리고 만다
그래서 배낭 안에 넣고 다니다 보니 수시로 꺼내보기가 쉽지않고
어떤 때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에도 짜증이 난다~
다시 되돌아 온 삼거리 마을
갈림길에서 왼쪽 저 길이 새재로 가는 길이지만
시간 여유가 많지도 않고 땡볕에 다시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기가 죽을 맛이라 포기를 한다
2003년 6월 5일 처음으로 지리산 종주를 할 때는 저 윗새재에서 출발을 하였는데 .....
다시 돌아 온 계곡길 탐방 지원센타
14:19 대원사 주차장 / 총 소요시간 : 3시간 49분
버스에 배낭을 벗어놓고 갈아 입을 옷가지를 챙겨 주차장 아래의 계곡물에 뛰어든다
땀으로 찌들은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 입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사들고 차에 오르는데
어제 집에서 혼자 막걸리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마셨는데도 이놈의 술은 잘도 목구멍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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