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등반사진/갈맷길, 해파랑길

갈맷길 3코스-2구간(증산공원-용두산공원-국제시장-영도대교-남항대교) : 2022. 3. 3.

딜라일라 2022. 3. 4. 04:21

 

부산갈맷길은 사포지향/四抱之鄕(바다, 강, 산, 온천)인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담고 있어

바닷가를 걷다보면 어느덧 산속이고, 산을 벗어나면 강이 있고, 몸이 노곤하면 온천이 반겨준다고 하지만

오늘의 이 3코스 2구간은 철저하게 부산의 시가지와 산복도로를 지나는 코스로

그대신, 근현대사를 비롯한 문화유적이 많아서 그만큼 발길을 잡아두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곳이다

 

 

11:40   범일2동 주민센터 출발 / 평소보다 시작 시간이 많이 늦었다

오늘은 부산진성에서 증산공원까지 이르는 '부산포 개항가도'를 따르면서 트래킹이 시작된다

 

 

부산진시장을 지나

 

 

지하 통행로를 통해 좌천동으로 간다

옛날에는 철로 건널목과 차단봉이 있었고 간수가 지키고 있었다

 

 

저기 옛 부산진성이 있었고 임진왜란 때 정발(鄭撥) 장군이 전사한 증산(甑山)공원이 보인다

 오른쪽의 한샘 건물은 옛 제일은행 부산진지점이 있던 자리다

 

 

좌천동 가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옛 삼성극장과 삼일극장이 있던 방향의 시가지 모습

 

 

일신기독병원을 지나면

일신기독병원은 1952년 9월 17일 호주의 선교사들이 부인병원으로 설립하였다

 

 

이내 정공단(鄭公壇)이 나온다

정공단은 임진왜란의 첫 전투지였던 부산진성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순국한 충장공 정발(鄭撥) 장군과

그와 함께 목숨을 바친 분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 제단이다

 

 

외문(外門)으로 들어가면 중문(中門)이 있어 사적(私的) 공간과 제단을 구분하고 있다

 

 

단의 중앙에는 정발(鄭撥) 장군의 비와, 그 오른쪽에 장군의 막료였던 이정헌(李庭憲)의 비가 있고

 

 

남쪽에는 함께 전사한 여러 군민들을 모신 비석과

남쪽 한 단 밑에는 충직한 노비인 용월(龍月)의 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동쪽에 장군의 애첩인 열녀 애향(愛香)의 비가 있다

열녀 애향은 부산 충렬사의 의열각에도 모셔져 있다고 한다

 

 

충장공 정발 전망비(戰亡碑)

 

 

담벼락 한 쪽에 세워져 있는 송덕비들을 살펴보다가 반가운 이름을 보았다

 

 

그 이름은 다름아닌 개성(開成)학교(옛 부산상고/현 개성고등학교 전신)를 세우신

선각자 박기종(朴淇琮) 선생이었다

민족의 앞날을 위해 앞장서신 선생의 정신을 기리며 머리를 숙인다

 

 

 

정공단 앞에 있는 독립유공자 정오연 생가터

 

 

일신여학교와 일신기독병원을 설립한 호주의 선교사들은 한 집안의 아버지와 딸들이었다

아버지 제임스 맥켄지(한국명 매견시)는 부산진일신여학교를

딸들은 일신부인병원을 설립하여 선교와 교육, 의료활동 등 다방면으로 헌신을 하였다

 

 

부산진교회

1892년 미국의 선교사에 의해 이 자리에 한옥 예배당이 건축된 것이 부산진교회의 시작이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

호주 선교사들에 의해 1895년 10월 15일 한 칸의 초가집에서 시작한 부산진일신여학교는

부산.경남지역 최초의 신여성 교육기관이었고

3.1독립운동의 깃발을 처음으로 올렸던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본 건물은 1905년 4월 15일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1925년에는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하여 동래 일신여학교로 개명하였으며

1951년에는 동래여자중학교와 동래여자고등학교로 분리되었고

1987년 3월 현재의 금정구 부곡동으로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독립선언문 가벽

 

 

독립선언문

 

 

독립선언문 가벽에는 또다른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그 주인공은 학교 선배이신 박재혁 의사와 최천택 의사이시다

두 분의 애국충절에 깊이 머리숙여 경의를 표한다

 

 

박재혁(朴載赫) 의사

박재혁 의사는 의열단 단원으로,  의열단이 감행하였으나 실패로 끝난 진영.밀양 폭탄사건에서

의열단 탄압에 앞장 선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를 1920년 9월 14일 고서적 상인으로 위장하여 찾아가

부산경찰서장을 향해 폭탄을 던져 중상을 입히고 결국 사망하게 하였다

폭탄 투척 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현장에서 체포된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왜놈 손에 죽기 싫다며 단식을 감행하여 사형 집행 전인  1921년 5월 11일 순국하셨다

박재혁 의사 동상은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수변공원에 있다

 

 

최천택(崔天澤) 의사

최천택 의사는 박재혁 의사와 부산공립상업학교 동기로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을 함께 모의하여 성사시킨 이후 체포되어 모진 고초를 겪었으나

박 의사가 끝까지 단독범이라고 진술하여 풀려난 뒤에도

독립군을 돕기위한 자금을 모으고 청년.사회운동 등에 헌신하며 지속해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청동 민주공원에 의사의 기념비가 있다

 

 

장건상(張建相) 선생

일제강점기 상해임시정부 외무차장,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한 돌립운동가

대청동 민주공원에 가면 선생의 동상이 있다

 

 

언덕길에서 내려다 본 부산진일신여학교, 부산진교회와 정공단

 

 

언덕길에서는 증산 아래의 금성고등학교가 보이고

 

 

증산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맞은편에 안용복 도일선 전시관이 있다

 

 

안용복(安龍福) 장군은 동래출신 어민으로 수군(水軍)인 능로군(能櫓軍)이었는데

일본에 건너가 왜인들에게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약 받아온 업적을 세워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수영사적공원에는 안용복 장군 사당과 위패를 모신수강사(守疆祠)가 있으며

충혼탑과 함께 동상도 있다

 

 

<참고사진> 수영사적공원에 있는 안용복(安龍福) 장군 동상

왜(倭)의 막부가 독도가 조선땅임을 자인한 두루말이 문서를 오른손에 쥐고

일본을 향해 호령하고 있는 안용복 장군의 늠름한 모습

 

 

 

기록을 보니, 처음에는 일본인 어부들에 의해 강제로 피랍되어 갔다 왔으나

두번 째는 1696년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나온다

 

 

 

안용복 장군 도일선(渡日船) 모형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증산공원으로 올라가는데

 

 

 

중간에 도로가 있기 때문에 내려서 한 번 갈아타야하는데.....

 

 

 

그 길 옆 벽면에도 박재혁 의사에 대한 기록물이 붙어 있다

 

 

의사께서 폭파한 당시의 부산경찰서

 

 

안용복 도일선 전시관 맞은편에서 증산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경사도가 37도에 계단수가 190개로 주민들에게 지옥의 계단으로 불리던 곳이었는데

주민편의를 위해 경사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2단으로 운행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증산공원으로 올라가는데 증산 왜성의 흔적이 보인다

부산진성 전투에서 승리한 왜군이 부산진성을 헐고 그자리에 본성(本城)인 증산 왜성(倭城)을 쌓았고

그 본성을 방어하기 위해 동남쪽 해안가인 지금의 자성대가 있는 곳에 지성(支城)을 쌓았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 수군은 지성을 일부 개보수 한 뒤, 진을 지성으로 옮겨 이를 부산진성으로 사용하였고

이후 방치되다가 일제 강점기 때 증산을 깎아 부산진성 앞바다를 매립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이후 주변 개발로 인해 폐허가 되고 그 흔적은 여기에 아주 조금만 남아 있는 것이다

 

 

12:35   증산(甑山) 정상 / 해발 130m

바다에서 바라보면 이 산의 모양이 시루(甑)와 같이 생겨

가마(釜)와 시루를 관련시켜 부산(釜山)이라는 지명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가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솥(가마솥)이 아니라 쇠를 녹이는 '철가마'를 이름한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富山浦라고 불렀으나 1481년(성종12년)에 釜山浦로 바뀌었다

 

 

건너편에 보이는 수정산인데 

 

 

봉우리를 망원으로 당겨 보니 통일교 통일동산에 있는 제일성지(第一聖地) 비석 옆의 태극기가 보인다

 

 

2층 누각인 전망대에 올라서니 .....

 

 

부산항과 영도 봉래산 너머로 부산 앞바다가 훤하게 조망이 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수군은 이렇게 조망이 좋은 증산을 두고 왜 바닷가 쪽으로 부산진성을 옮겼을까?

바다에 인접해 있어 선제적인 수비가 더 효율적이었을까.... 

그래도 이곳에 망루 하나 정도는 있었겠지 ..... 그러나, 증산 망루에 대한 흔적이나 자료는 없다

 

 

그런데, 증산공원에서 사달이 났다

증산공원 정문으로 나가야 하는데 오던 길을 따라 그대로 내려갔던 것.......

시그널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를 않아 그제서야 선답자의 기록을 보니 잘못된 줄 알았지만  

다시 올라가는 대신 좌천동 산복도로를 따라 빙 둘러서 가기로 하고 진행하다가

여기에서 증산공원 정문에서 내려오는 갈맷길과 합류를 한다

 

 

이후 여기에서부터는 제대로 갈맷길을 찾아 가는 것이다

 

 

산복도로는 조망이 시원하게 열려 눈이 참 즐겁다

길 이름인 망양로(望洋路)답게 바다 쪽 전망은 항상 열려 있다

 

 

수성초등학교를 지나고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내리는데 배가 고프다

시계를 보니 1시 25분이다 ......   조금 더 참았다가 계획대로 초량에서 군만두 먹어야지 .....

 

 

갈맷길이 갑자기 여기에서 넓은 길을 버리고 오른쪽 좁은 길의 계단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한다

 

 

계단길이 장난이 아니다

 

 

 

힘들여 계단을 올라가서 계속 가니 여기에서 큰 길과 만난다

아마도 지름길로 유도를 한 것 같은데 이럴 필요는 없는것 같다....  조금 돌더라도 전망보는 재미가 있는데 .....

 

 

저기 중앙공원 충혼탑이 보이고

 

 

영도 봉래산이 조망되고

 

 

시야를 아래로 돌리니 부산고등학교가 보인다

왼쪽이 부산중학교, 오른쪽이 부산고등학교 운동장인데 부산고등학교 건물이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부산중학교 교사는 바다를 보고 있는 모양인데  언덕 아래에 있어서 그런지 여기서는 보이지 않네

 

 

13:53   유치환 우체통

청마 유치환은 이영도 시인에게 20여 년 동안 5천통이 넘는 편지와 엽서를 보냈다는 것은 유명하다

주변에는 엽서를 쓰는 카페 들이 있다

 

 

청마의 고향인 거제 둔덕면 방하리에는 청마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고 거기에도 청마 우체통이 있다

그리고, 인근 산방산 기슭에는 청마의 묘소가 있다

 

 

 

여기에서 산복도로를 벗어나 산 아래 동네로 내려선다

 

 

초량성당

 

 

 

14:16   드디어 초량전통시장까지 왔고

 

 

중학교 동기들과 함께 자주 이용하였던 남해태양횟집을 지나 차이나타운으로 향한다

 

 

구(舊)  백제병원(百濟病院)

1927년 지어진 서양식 벽돌 건물로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이었다

 

 

 

도심 한 가운데에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진관

 

 

차이나타운

1884년 이곳에 청나라 영사관이 생기면서 형성된 부산 최대의 중국인 거주지역으로

화교중고등학교와 중국식당들이 밀집하여 있다

 

 

텍사스 거리

텍사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금은 미군은 떠나고

러시아 선원들이 달러환전이나 쇼핑을 하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었으나

그마저도 코로나 여파인지 한산하게만 보인다

외제 양주가 귀하던 시절, 선물용 양주를 구하느라 이곳을 종종 찾기도 하였다

 

 

 

신발원과 원향제가 보이고

 

 

부산화교중고등학교

 

 

초량 근대역사 갤러리

 

 

초량 주변의 옛 풍경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부산역 변천사

 

 

옛 부산항 전경 사진

 

 

이 홍성방은 옛날 초량에서 근무할 때 단골로 이용하였던 곳인데 만두와 오향장육이 맛있었다

 

 

일품향도 유명한 곳이고

 

 

장춘방도 있지만 .......

 

 

계획한 대로 영화 '올드보이' 촬영지인 장성향에서 그 유명한 군만두를 맛보기로 한다

벌써 2시 30분이 넘었다 .....   진짜 배가 고프다 ......  트래킹 시작을 좀 일찍할 걸~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최민식과 가게 사장님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손담비의 노래와 춤으로 유명한 할담비 지병수 어른의 사인지가 걸려 있다

 

 

바싹하게 구운 만두피에 고기육즙이 가득해서 씹으면 입 안으로 육즙이 주르르 흐른다

군만두는 5개 짜리(7천원)가 있고 7개 짜리가 있는데

어른 주먹만한 만두를 3개만 먹어도 충분한데  5개를 다 먹으니 배가 용두산만 해졌다

 

 

장성향에서 배를 채우고 중앙동으로 간다

 

 

옛날 원래의 40계단이 있던 거리의 조형물

복병산의 주택가와 해안가 매립지를 연결하는 통행로였으나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아야 했던 피란민들이 부두에서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누이는 장소이기도 했고

박스를 깔고 선잠을 자며 하루벌이 노동의 단꿈을 꾸는 곳이기도 했을터 .....

 

 

원래의 40계단이 있었던 곳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 대화재 이후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가

이곳에서 남쪽으로 25m 떨어진 곳에 새롭게 만들었다

지금은 계단 옆에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하고 있다

 

 

 

현재의 40계단 거리 풍경

 

 

옛날 저기 저 2층에 항구주점이 있었는데

나이 지긋한 악사의 아코디온 반주에 맞춰 노래부르는 재미로 한창 들락거렸던 곳인데 아직도 그대로이다

 

 

지금의 40계단

 

 

아코디온을 연주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처연함이 느껴진다

 

 

옛 현대극장 자리에 있는 제일은행 부산지점 모습

고2 때  학교에서 단체 영화관람을 위해 모였다가 3선개헌 반대 데모를 시작했던 곳이다

 

 

화국반점

'신세계'라는 영화에 등장한 이후 간자장 전문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남매가 예전부터 운영하는 집으로, 옛날 요 앞에 근무할 때 숱하게 드나들던 단골집이었는데 .....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선생 기념관

앞의 모과나무는 의령 부림면 입산리에 있는 선생의 생가에 있던 것을 옮겨 심었다고 한다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선생

상해임시정부 첩보 36호의 국내책이었고, 독립투사이자 민족교육자

선생은 이곳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국내외 독립운동가와 임시정부에 보내는 군자금을 조달하였으며

장학회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기도 하다가

1930년대에 들어 가산을 정리해 만주지역으로 망명한 뒤 발해농장과 발해학교를 설립하였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 백산샹회의 옛날 사진인데

위, 아래 사진 모두 이 앞을 지나다니면서 숱하게 보아왔던 모습이다

 

 

백산이 백산상회를 관리하던 윤주석에게 보낸 친필 편지

 

 

15:44   용두산 공원

옛날에는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 하였다가

그후 산세가 흡사 용모양이어서 일본에서 건너오는 왜구들을 삼켜버릴 기상이라 하여

용두산(龍頭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678년(숙종 4)에는 이 산을 중심으로 초량 왜관이 설치되어 대일외교 및 교류의 중심지로

개항(1876) 이후에는 일본인들의 전관거류지가 되었다

또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이 산에 신사(神社)를 세웠으나  8․15광복을 맞자마자 일본신사가 헐려 없어졌고

그 뒤 한국전쟁 때는 부산으로 밀려든 피난민들이 판자촌을 이루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1954년 12월 10일에 일어났던 큰 불로 용두산 피난민 판자촌이 불타 없어진 뒤 나무를 심었고

1957년에는 고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공원’(雩南公園)이라 불렀으나

4․19 혁명 이후 다시 용두산공원으로 환원되었다

 -[출처] '달뫼'님의 불로그 달뫼의 발길 닿는 어디메든-

 

 

 

이순신장군 동상과 부산탑

부산탑은 1973년에 해발 69m의 용두산 정상에 120m 높이로 건립된 부산의 랜드마크이자

2012년 6월 탑 정상에 불국사 다보탑의 보개(寶蓋)를 본뜬 등대가 설치되어

국내 최고 높이(189m)의 등대로 기록되고 있다

 

 

 

천주교 중앙성당

 

 

 

저기 복병산 남쪽 사면에 있는 부산기상관측소가 보인다

1933년에 세워진 부산기상관측소는 근대 기상관측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부산광역시 시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산근대역사관 앞의 대청로

대청로는 부산의 첫 신작로로 1889년에 개설되었다고 한다

 

 

부산근대역사관

옛 미국 문화원을 1999년 부산시에서 인수하여  2003년 7월에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개관을 하였는데

1982년 3월 18일에 일어난 미문화원 방화와 점거사건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은 미국이 전두환 대통령과 신군부세력의 군사독재를 용인하고 지원하는데 대한 항거였으며

사건 관련자들을 체포, 구속하는 과정에서 천주교인들까지 탄압함으로써 종교계의 민주화운동을 촉발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휴관중이다

 

 

보수동 책방골목

한국전쟁 때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잡지들과

피난민들이 가져온 책을 호구지책으로 파는 가게들이 자리잡으면서 시작되었는데

한 때 100곳이 넘던 책방들이 지금은 30여 개도 채 안된다고 한다

 

 

얼마전 뉴스를 보니 보수동 책방골목 살리기 운동 일환으로

각 책방들이 보유하고 있는 책의 리스트를 데이타로 저장하여 누구라도 PC에서 검색할 수 있도록 한다고 들었다

 

 

부평동 깡통시장 / 지금은 야시장으로 더 유명해졌다

 

 

국제시장 꽃분이네

오늘도 몇몇 젊은이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옛 제일은행 창선동지점 건물

 

 

남포동 BIFF 거리

 

 

70년 전통의 18번 완당집

옛날 바로 옆의 창선동지점에서 근무를 할 때

숙취 후의 해장을 하거나, 전날 숙직을 한 뒤의 아침식사를 이 완당으로 때우곤 했었다

옛날에는 2층에 있었는데 지금은 건물 지하로 내려가 있다

 

 

먹자골목의 포장마차 촌 / 씨앗 호떡이 유명하다

 

 

자갈치시장으로 간다

구덕산에서 흘러내리는 보수천 하구의 자갈이 많은 장소에 시장이 서서 자갈치 시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소리는 들리지 않네 ..........

 

 

싱싱한 생선회로 유명한 명물횟집과 바다횟집

 

 

자갈치에도 크루즈 관광유람선 선착장이 있구나

 

 

수협 자갈치 위판장

 

 

자갈치시장 친수공간

친수공간으로 새로 단장이 되면서 예전에 자리를 잡고 있던 고래고기 포장마차들도 사라졌다

 

 

웃음등대

 

 

영도대교

1934년 11월 23일 개통된 도개식 다리로

한 달에 두 번, 둘째와 넷째 수요일 오후2시에 15분간 다리를 들어 올렸으나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잠정 중단을 하고 있다

 

 

16:35   유라리 광장

 유럽과 아시아인이 함께 어울려 즐기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이곳 유라리 광장은 영도대교 도개행사를 보며 촬영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옛 점바치 골목의 흔적

나도 결혼 전  이곳 점바치 골목의 점집을 찾은 에피소드가 있다

 

 

영도대교와 나란히 서 있는 부산대교

 

 

현인 노래비

예전에 있던 자리에서 조금 옮겨져 영도경찰서 앞에 있다

예전에는 바닥을 밟으면 현인의 노래가 흘러나왔었는데 지금은 그런건 안보인다

현인은 부산출신의 가수다

 

 

영도에는 옛날부터 말목장이 있었다

절영(絶影)이라는 지명도 '그림자가 끊어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천리마'에서 유래되었다 하고

봉래산 중턱에 예전 소를 기르던 목장 자리에 '목장원'이라는 고깃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뷔페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전차는 1910년 강제합방 얼마후 부산진과 동래 사이에 처음 개통된 후

영도다리가 생기면서 영도 남항시장까지 전차노선이 확장되었다

 

 

 

이제부터 깡깡이 예술마을 거리로 들어선다

 

 

대평동 풍경

 

 

깡깡이 안내센터

영도 대평동은 우리나라 근대 조선산업의 발상지다

녹슨 배의 표면을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 때문에 '깡깡이마을'이라 부른다

 

 

배를 뭍으로 끌어 올리는 도크

 

 

벽면에 조선산업의 발전상이 연대별로 그려져 있다

 

 

선박의 수리 단계를 과정별로 표시한 조형물

 

 

 

가림막 사이로 보이는 수리중인 선박 / 보아하니 깡깡이질은 이미 끝낸것 같다

 

 

마을 아파트 벽면을 장식한 깡깡이 할머니 그림

제목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고, 외국작가  헨드릭 바이키르히(2017)의 작품이다

 

 

국제선용품유통센터

 

 

17:13   남항방파제

 

 

남항 매립지 수변테마공원 산책로

 

 

산책로가 제법 길~다

 

 

영도 봉래산

 

 

매립지에는 각종 체육시설들이 잘 설치되어 있다

 

 

남항 방파제의 등대

 

 

남항대교 / 4코스 1구간의 출발점이다

 

 

남항대교 아래로 저기 송도 끄트머리의 동섬과 연결된 용궁구름다리가 보인다

바깥쪽의 큰 섬은 두도전망대에서 코 앞에 바라다 보이는 두도(頭島)/대가리섬이다

 

 

줌으로 당겨보니 마침 선박 한 척이 지나가면서 동섬을 가리고 있다

 

 

선박들의 묘박지인 부산 외항

 

 

드디어 다음 코스인 흰여울 문화마을이 보이고

 

 

17:28   절영 해안산책로 입구에서 오늘의 여정을 마치게 된다

늦게 시작을 하였는데 해가 지기 전에 마치게 되어 다행이다

 

 

걸은 거리 19.07km에 5시간 48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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