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등반사진/갈맷길, 해파랑길

갈맷길 3코스-1구간 (오륙도 선착장-신선대-평화공원-부산진시장) : 2022. 2. 22 with 형화, 영식

딜라일라 2022. 2. 23. 23:26

 

10:35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 출발

 

 

백운포 고개 교차로를 지나 신선대를 향해 가다가 .....

 

 

오른쪽 언덕 위에 있는 천주교 용호동묘지에 올라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인 안성녀(루시아) 묘소를 찾아 헤매었으나 찾을 수가 없다

마침 마주친 사람에게 물어보니 도로 아래쪽에 있는 천주교 묘지에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서 다음 기회에 찾아보아야겠다

 

 

11:33   신선대 주차장

 

 

주차장 한켠에 안성녀(루시아)여사의 묘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자세히보니 백운포 체육공원에서 올라가야 제대로 찾을수가 있겠으니 천상 다음 기회로 .....

 

 

 

일주도로를 따르지 않고 산으로 바로 오른다

 

 

신선대 봉우리 앞의 전위봉인 180m봉 정상

 

 

180m봉에서 내려오면 일신정(日新亭) 앞으로 내려서고 좌.우 일주도로는 여기에서 조우한다

 

 

일신정(日新亭) 사거리에서 정면의 일주도로를 30m 정도 오르다가

오른쪽의 산길로 오르면 신선대 봉우리가 나온다

 

 

11:52   신선대(神仙臺)

옛날의 전설에 나오는 '무제등'이라는 큰 바위는 신선대 부두공사로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전망대에는 남쪽인 영도 방향  바다 쪽으로 조망이 확 트이는데

해양대학교가 있는 조도(鳥島)를 영도사람들은 '아치섬'이라고 부른다

저 섬에서 보는 떠오르는 아침해가 제일 아름답다고 하여 아침섬(朝島)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산 아래 신선대부두 너머로  바다 건너 천마산, 승학산, 구덕산, 엄광산이 보이고

 

 

옛 부산공전(부산공업대학)이었던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도 보인다

 

 

줌인한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

 

 

지금은 산 위의 전망대에서만 그 절경의 일부만 느껴볼 수가 있지만

그 옛날 산 아래 용당동 해변에 서면 산 쪽과 바다 쪽의 절경 모두를  감상할 수가 있었으니 

과히 신선이 백마를 타고 와서 유람을 할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옛 백운포 자갈마당이 있던 곳에 지금은 해군 제3함대사령부가 자리하고 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사진은 올리지를 못한다

 

 

브로우턴 기념비

1797년 영국 해군 프로비던스호의 윌리엄 브로우턴 함장의 부산 방문 2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비

 

 

신선대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오른쪽 저기 오륙도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보는 오륙도의 조망이 아주 좋다

남구청에서는 여기에 전망데크를 설치해도 좋을듯 싶은데 .....

 

 

이제 애국지사 정몽석 선생의 묘소를 찾아 가기로 한다

 

 

아까 브로우턴 기념비 옆에서 만난 분의 말에 의하면

일신정 정자에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저 갈림길에서 왼쪽 오르막길 100m쯤 가면 나오는 

 

 

이 약수터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길 없는 길을 찾아가면 있다고 하면서

옛날에는 안내판과 이정표도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이지를 않더라고 했다

 

 

약수터

그런데 약수터 아래 주변을 근30여 분 동안 샅샅이(?) 뒤져보아도 묘소는 보이질 않는다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묘소는 잘 관리를 하면서

정작 애국지사의 묘소는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건지 슬며시 부아가 난다

남구청에 건의 아닌 항의를 해야겠다 

 

 

<참고사진> 애국지사 정몽석 선생 묘소 / 앨범쟁이(woncompark)님 블로그에서 발췌

 정몽석(鄭夢錫) 선생은 경남 하동 금남면 대치리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우신 정기룡 장군의 후손이며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항일투쟁에 일신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의 독립만세를 주도하는 한편

독립군 지원자금 모금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정부에서는 그 공을 기리어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896. 4. 16 ~ 1961. 8. 16)

 

追記 : 정몽석 지사 묘소에 대하여 부산남구청에 전자민원으로 문의한 바 

지난 2017년 6월에 이장을 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는 답신을 받았음

 

 

정몽석 선생의 묘소를 만나지 못함 아쉬움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무제등공원으로 간다

 

 

돌은 자연석인데 인공적으로 쌓은 것 같은 바위산

신선대부두 공사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는 그 '무제등'을 재현해 놓은 것일까?   아무런 설명이 없다

 

 

무제등공원을 내려와 동명오거리를 향해 길을 나서는데

 

 

저 앞에 지난 2020년 9월에 올랐던 봉오리산이 모습을 보인다

 

 

동명오거리

 

 

용당요양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

 

 

12:55   평화공원 시계탑 옆 중간점 인증대 / 소요 시간 : 2시간 20분

천주교묘지에서와 정몽석 선생 묘소 때문에 시간을 다소 지체했다

 

 

UN조각공원을 지나고

 

 

부산박물관

조각공원 끝에서 샛문을 통해 유엔기념공원으로 들어가려니 코로나 때문에 2월 9일부터 막아 두었다

하는수 없이 부산박물관 앞을 빙 둘러 문화회관으로 간다

 

 

유엔기념공원 정문

 

 

정문 옆 초소에는 정장을 한 위병 한 명이 엄숙하게 보초를 서고 있었다

옛 유엔기념묘지의 명칭은 2001. 3. 30 유엔기념공원으로 개칭이 되었다

 

 

지난 2020년 7월 유엔기념공원을 두루두루 둘러본 적이 있어 정문에서 추모관만 바라보고 발길을 돌린다

추모관은 영상으로 UN묘지에 대한 역사와 자료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 추모관은 평양 출신으로 한국전쟁 피난시절 부산지역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현대 한국 건축계의 선구자인 김중업(金重業)이 설계한 건물이다

 

 

부산문화회관

갈맷길은 대극장과 중극장 사이로 이어진다

 

 

13:55   남광시장 앞 식당에서 칼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

 

 

14:18   옛 부산외국어대학교를 지난다

 

 

8부두 앞에서 교통표지판의 대연동 방향 성지고등학교 쪽으로 간다

 

 

성지고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뒤에 보이는 산이 우룡산공원이 있는 천제산(140.1m)이다)

 

 

재개발단지 휀스를 끼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휀스 너머에는 대규모 재개발을 위한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도시재생산이라는 명분 아래 또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날까 ........

 

 

14:37   신연초등학교를 지나는데 언덕배기 꼭대기에 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언덕 아래 주변에 모여있던,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옛 마을의 어린이들이 다니던 학교였을 것인데

주변이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조성이 되면 이 학교 하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우암동 도시숲 정자에서 내려다 본 조망

(도시숲 능선을 따라가면 우암산으로 이어진다)

 

 

지장사 / 뒤에 보이는 건물은 성천초등학교다

 

 

재개발로 주변이 온통 공사판인 가운데로 갈맷길은 계속된다

 

 

14:59   장고개 /  4시간 24분

우암동 쪽에서 문현동 쪽으로 장을 보러 갈 때 넘던 고개다

 

 

벽에 있는 그림처럼 옛날에는 고갯마루에 주막이 있어

언덕배기로 힘들여 올라오느라 피곤한 다리품도 풀 겸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고 갔을 것이다

 

 

문현동 곱창골목

 

 

영화 친구에도 등장한 칠성곱창 집

추운 겨울날 친구들과 둥그런 화덕 곁에 둘러앉아 연탄불에 구워먹는 곱창맛은 가히 일품이다

 

 

문현교차로

 

 

동천(東川)

옛날 대선소주 공장이 있던 시절, 이 부근을 지날 때마다 풍기던 이상야릇한 주정 냄새가 떠오른다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여기에 있는 것은 옆에 영가대가 있기 때문인데

영가대(永嘉臺)는 조선 후기 통신사를 비롯한 사신들이 무사항해를 기원하며 해신제를 지내던 누각이다

 

 

조선통신사 역사관은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15:22   부산진성(釜山鎭城)

좌천동 금성고등학교 뒤에 있는 현재의 증산공원에 있던 부산진성이 임진왜란 이후에는 이곳으로 옮겨졌다

 

 

부산진성 동문(東門)인 건춘문(建春門)

임진왜란 때 증산(甑山)의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일본은

그 성을 허물고 증산 정상에 본성(本城)인 증산 왜성(倭城)을,

본성을 방어하기 위해 동남쪽 해안가에는 지성(支城)을 쌓았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 수군은 지성을 일부 개보수 한 뒤, 진을 지성으로 옮겨 이를 부산진성으로 사용하였다

부산진성이 모성(母城)이라는 의미로,  자성(子城)을 산 정상에 설치하고

장대(將臺)를 세웠다는 뜻으로 자성대(子城臺)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지금의 진남대(鎭南臺)이고

옛 자성대라는 통칭도 그렇게 생겨진 것이다

 

 

최영 장군 비각

 

 

진남대(鎭南臺)

 

 

천장군 기념비

 

 

영가대(永嘉臺)

조선 후기 통신사를 비롯한 사신들이 무사항해를 기원하며 해신제(海神祭)를 지내던 누각이다

 

 

서문(西門)인 금루관(金壘關) 뒷쪽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증산의 본성(本城)을 방어하기 위해 이곳 해안가에 지성(支城)으로 쌓은 성이다

 

 

금루관(金壘關) 앞쪽 모습 

 

 

1917년경의 부산진성 그림

 

 

15:46   범일2동주민센터에서 갈맷길 3코스 1구간을 마친다

총소요시간 : 5시간 11분

 

 

 

부산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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