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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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산 겸효대(謙孝臺) 흔적을 찾아서 : 2020. 8. 19

딜라일라 2020. 8. 19. 18:50

배산에 있다는 겸효대(謙孝臺)를 찾아 나선다

그간 배산은 여러번 올랐었지만 그 배산성지(盃山城址)에 겸효대가 있었다는 것은

최근에 에덴공원 답사를 하면서 강선대와 함께 부산8경 중의 하나인 겸효대가 배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배산을 오른다는 것은 겸효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겸효대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부산8경>

제1경: 몰운대   제2경: 태종대   제3경: 신선대   제4경: 해운대   

제5경: 오륜대   제6경: 강선대   제7경: 겸효대   제8경: 의상대

 

 

<겸효대(謙孝臺)>

부산 연제구 연산동 산38-1 일대의 배산성지(시 기념물 제14호)가 있는 부근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었던 곳으로

고려 후기의 관인 김겸효(金謙孝)가 지낸 곳이다.

1366년(공민왕 15) 이존오(李存吾)와 함께 당시의 실력자 신돈(辛旽)을 탄핵하였다가 살해될 뻔하였으나

이색(李穡)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고 동래 현령으로 좌천되어 부임한 정추(鄭樞)의 겸효대(謙孝臺)에 관한 詩가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다.

정추는 동래 현령으로 있으면서 지금의 배산(盃山) 위에서 신선(神仙)처럼 사는 김겸효를 자주 만나

가슴을 터놓고 지냈다.

동래 현령으로 좌천되어 온 정추는 속세를 벗어난 김겸효의 신선 같은 삶이 그리워

현령 일을 보는 여가를 타서 김겸효를 자주 찾은 것이다.

당시 겸효대는 경치가 뛰어나 시인과 묵객들의 유상처(遊賞處)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겸효대에 대한 기록은『동국여지승람』고적조에는 "동래현 남쪽 5리에 있다 하고

선인인 김겸효(金謙孝)가 노닐던 바 있어 그리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또, 『동래부지』산천조에는 "척산을 배산(盃山)이라고도 한다. 

동래부의 남쪽 5리에 있는데 위에 겸효대(謙孝臺)가 있다"라고 하였다.

겸효대가 있었던 위치가 지금은 막연하게 배산 위라고 했으나, 실제로 가능한 곳은 여러 곳으로 보인다.

- 부산역사문화대전  부산향토문화백과에서 펌 -

 

<자료사진>  1950년대 금련산에서 본 배산 모습

 

 

오늘의 답사 기점은 연산8동의 연동시장에서 시작을 한다

 

 

연산동 고분군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조성된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배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온 산등성이 정상부를 따라 18기의 봉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경사지에는 크고 작은 무덤 1,000여 기 이상이 있다

 

고분 너머로 배산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배산은 산의 모양이 술잔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아 잔배(盃) 뫼산(山)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고분과 아파트의 앙상블

저 거대한 아파트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무덤인가?

 

 

 

고분군을 지나 여기에서 곧바로 오르면 배산으로 가게되지만

오른쪽에 있는 혜원정사를 먼저 구경하고 가기로 한다

 

혜원정사로 가는 길  오른쪽 아래로 문화체육공원이 있고

 

연산중학교를 지나면

 

이내 혜원정사(慧苑精舍)가 나온다

 

천왕문 위 범종루의 현판에는 묘봉산(妙峯山) 혜원정사라고 되어 있다

 

 

 

중앙에는 팔작지붕의  대웅보전이 자리를 잡고 있고

 

대웅보전 왼쪽에는 명심전(明心殿)이

 

오른쪽에는 육화전(六和殿)이 있다

 

 

 

혜원정사를 나와 이제 산으로 향한다

 

 

 

 

 

오른쪽 저 아래에 보이는 법당같은 저기가 '감천암'인가보다

 

 

멍에정 도착

'멍에'란 마음이나 행동을 구속하거나 억압하는 것을 뜻하는데, 무슨 의미로 정자 이름으로 붙였을까

 

멍에정 바로 뒤로 배산 정상으로 가는 데크길이 있지만

 

오른쪽 대진그린타워 방향 언덕으로 먼저 올라가 보기로 한다

 

언덕 위에는 조그만 체육시설이 있고

 

 

그 끝에 있는 바위 암봉 앞으로 조망이 열리는 모양인데 .....

 

 

금련산과 황령산이 한 눈에 다 들어오고

 

저 멀리 서면 방향까지 전망이 펼쳐진다

그 옛날 김겸효와 정추도 여기에 서서 풍류를 노래했을까

 

언덕에서 바라보이는 배산은 그야말로 엎어 놓은 술잔이다

 

제법 경사진 긴 데크 계단과  나무계단을 땀 흘려 오르면

 

 

 

드디어 배산 정상이다

 

여기는 배산 정상의 두 봉우리 중 서봉으로 이곳이 배산의 최고봉이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함께  삼각점이 있고

 

북쪽 끝으로 조망이 펼쳐지는데 

 

 

부산 북쪽으로 자리잡은 산들이 다 보이는데

 멀리로는 철마산과 아홉산, 무지산(운봉산)-개좌산도 있지만 미세먼지 탓에 다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동래읍성과 복천박물관이 있는 마안산과, 그 앞에 복천동 고분과 동장대(東將臺)가 있는 망월산도 보이고

 

산 기슭에 혜화여고가 자리를 하고 있는 반여동의 옥봉산도 보인다

 

 

이산(李山) 표지석이 여기 배산에도 보인다

구한말인 1918년 임야수탈을 위한 임야조사령에 의해 부산 근교의 몇몇 산들은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되었다

이왕실 사무를 총괄하는 창덕궁은 사유지 이의서를 제출하고

그 산들의 일대에 조선 이왕실 소유라는 이산 표지석을 세우고 조선총독부에 사유지로 신고했다

그 결과 1924년에 창덕궁에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현재 이산 표지석은 장산과 아홉산 일대에서만 17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배산 정상에서 동봉을 향해 내려서면 두 봉우리 사이의 평지에 망해정(望海亭)이 있는데

이곳이 옛 배산성의 한 가운데인 셈이다

배산성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배산의 7부 능선과 골짜기를 두르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부산의 중심지가 대부분 조망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부산 앞바다가 보인다고 하지만 주변은 나무숲에 가리어져 바다는 보이지를 않는다

옛날 김겸효와 정추가 유유자적 했을 때에는 바다가 보였을까?

 

망해정 옆에는 배산성지와 유물 발굴에 대한 안내문은 있지만

겸효대에 관한 안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고 예전에 있었던 정추의 겸효대 시 안내판도 보이지 않는다

 

<참고사진>

 

 

 

동봉으로 오르기 전에 지금 한창 유물 발굴 중인 옛 우물터와 잔뫼정으로 간다

 

 

부산시에서 2016년부터 발굴중인 옛 우물터

 

2017년 1차 발굴조사에 의해 발굴된 영남 최대 규모의 원형 집수지(集水址) 2기

집수지 바닥에서 목간(木簡)과 대형 나무돗자리 등 여러가지 희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참고사진>  옛 우물터의 모습

 

<참고사진>

 

<참고사진>  잔뫼정

잔뫼란 배산(盃山)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다시 망해정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동봉을 향해 오른다

 

배산 동봉(東峰) :  해발 246m

 

동봉의 바위 암봉

여기에도 겸효대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예전 이 바위에 누군가가 써 놓았던 '배지산령(盃池山靈)이라는 글자도 

이제는 비바람에 퇴색되어 보이질 않는다

 

2009년 4월에 찍은 동봉 정상의 바위 사진

 

그때는 바위 표면의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동봉에서는 해운대 센텀시티 쪽의 전경이 나무숲 사이로 살짝 펼쳐질 뿐이다

 

겸효대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를 않는다

조그만 이 배산 전체가 겸효대였다고 할까

이제 바람고개를 거쳐 하산길을 잡는다

 

바람고개로 내려가는 도중의 전망대 쉼터

 

 

 

바람고개

 

 

 

바람고개의 체육시설

 

 

연산배수지

 

다음번 부산8경 답사지는 '신선대'로 정하고 오늘의 겸효대 흔적 찾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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