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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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묘지(유엔 기념공원) : 2020. 7. 26

딜라일라 2020. 7. 26. 23:02

지루한 장마 중 날이 반짝하고 맑게 개여 카메라를 메고 대연동 수목전시장(舊 대연수목원)으로 가면서

바로 옆의 UN기념공원(UN묘지)를 찾았다

정문 옆 초소에는 정장을 한 위병 한 명이 엄숙하게 보초를 서고 있었다

옛 유엔기념묘지의 명칭은 2001. 3. 30 유엔기념공원으로 개칭이 되었다

 

몇십 년 만에 다시 찾은 UN묘지는 훨씬 더 넓어져 보이고 단장이 잘 되어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추모관이 보이고 .....

 

추모관 / 영상으로 UN묘지에 대한 역사와 자료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추모관은 평양 출신으로 한국전쟁 피난시절 부산지역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현대 한국 건축계의 선구자인 김중업(金重業)이 설계한 건물이다

 

왼쪽으로는 묘역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보이는데

묘역은 맨 나중에 나올 때 참배를 하기로 하고 먼저 산책로를 따라 공원 주변을 쭉 둘러보기로 한다

 

묘역을 'ㄷ'자로 둘러싸고 있는 공원과 산책로는 깔끔하고 안락하게 조성이 잘 되어있고

 

평화공원과 조각공원, 수목전시관이 바로 인접해 있어

이웃 주민들과 부산시민들이 가족단위로 많이 찾고있는 힐링의 장소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이 UN기념공원은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에 토지를 기증하여 현재는 유엔 소유의 땅이다

 

유엔군 위령탑

 

한글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한다

 

위령탑 주변에는 유엔 묘지를 찾은 역대 대통령들의 방문 기념석이 있는데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 기념석은 없네

 

위령탑에서 돌아서서 중앙묘역을 향해 가는데 .....

 

오른쪽에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를 모신 곳이 나오고

 

안내문을 보니 참전17개국의 전사자 40,89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모양인데

미국의 전사자 수가 36,492명으로 압도적(?)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영국이 1,177명이고, 터키가 1,005명으로 세번째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파견된 유엔22개국 중 전투지원국은 16개국인데 17개국의 명단이 보이길래 자세히 살펴보니

의료지원6개국 중 노르웨이 전사자 3명의 이름이 같이 올라있다

 

 

 

사람 키 보다 더 높은 추모명비는 참전국명 가나다 순으로 맨 먼저 오스트렐리아(1번)를 시작으로

맨 마지막 전사자 수가 제일 많은 미국으로 끝이 나는데

 

미국은 전사자 수가 36,492명이나 되다보니 

추모명비의 번호가 21번에서 맨마지막 140번까지 된다

 

 

 

이제 묘역으로 들어간다

 

이곳에 안장된 국가별 수치를 보면 영국이 제일 많고,

그 다음엔 터키와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등 순으로 100명 이상의 안장자를 기록하고 있다

전사자가 36,492명으로 제일 많은 미국은 안장 인원이  겨우 39명 뿐이다

 

 

참전국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 장엄한 묘역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하면서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한다

 

886명이라는 제일 많은 안장자를 모신 영국 묘역

 

세 번째로 많은 안장자를 모신 캐나다 묘역

 

호주 묘역 

 

두 번째로 많은 안장자를 모신 터키 묘역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미국의 묘역은 몇 기 밖에 보이지를 않는다

총 전사자 36,492명 중 겨우 39명만 이 UN묘지에 안장되어 있는데

희생자가 너무 많아 수습한 전사자의 유골이 극히 적은데다가

수습된 유골은 대부분 본국으로 모신 까닭일 것이다

 

미국 묘역에서 눈여겨 볼 묘지가 하나 있다

전쟁고아의 아버지이고 부산의 아버지인 '리차드 위트컴'  장군이다

위트컴 장군은 이곳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는 유일한 장군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서 피란민과 고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푼 리처드 위트컴 장군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걸친 껑충 큰 키의 외국인인 그는 

바로 ‘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불리는 위트컴 장군이다

위트컴 장군의 선행 가운데 유명한 일화는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 사건이었는데

한겨울에 집을 잃은 3만여명의 피난민이 거리로 나오자

당시 미군 군수기지사령관이던 위트컴 장군은 식량과 침구 등 군수품을 아낌없이 제공하였다

피란민들은 살아갈 희망을 얻었지만 군수품을 내준 것이 문제가 돼 본인은 본국에서 청문회에 회부되었으나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의 진정한 승리는 그 나라의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것이다"라는 명언으로

청문회에서는 의원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결국 전역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피란민과 고아들의 아버지로 남았고, 유언에 따라 UN 기념공원에 안장되었다

 

부산 메리놀병원과 성분도병원을 건립하였고

초기 부산대학교의 종합대학으로 승격 이전 시 현재의 장전동 캠퍼스 부지 확보에 크게 공헌하는 등...

한국을 향한 끝없는 애정은 지금도 여기저기 그 흔적이 남아 있으며

위트컴 희망재단은 아직도 왕성히 활동 중이다

 

위트컴 장군의 부부 합장묘

묘비를 보면 WORLD WAR 1 & 2, KOREA라고 적혀 있는대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육군보병 장교로 참전하였고,

2차 대전 때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오마하 전투에 투입되었는데

환갑이 다 된 그를 한국전쟁에 미군 제2군수사령관으로 소환한 것은 

장기전에 지친 유엔군에게 군수물자를 원활히 보급하여 전투력을 보강하고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휴전을 성립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고(故) 리차드 위트컴 장군

그의 한국인 부인 한묘숙 여사는

언니는 여류소설가 한무숙이고, 동생이며 소설가인 한말숙은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아내였다

위트컴 장군이 사망한 이후 부인 한묘숙 여사도 부군의 유언에 따라

위트컴 희망의 집 이사장으로 여러가지 활동을 하다가

2017년 작고한 뒤 여기 유엔기념공원에 부군과 함께 합장되었다

 

묘역 한 켠에는 6.25전쟁 때 유엔군에 파견되어 있다가 전사한 한국군(카투사) 36기의 묘역도 있고

 

이 중 5기는 이름도 없이 무명용사로 남아 있는데

최근 유전자 감식으로 70년 가까이 방치된 무명용사들의 이름을 찾아주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일부 묘역에는 후손들에 의해 배우자를 사후에 함께 안장한 모습도 보인다

 

묘역에 서서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며 전쟁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을 치루고 있지 않은가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플라스틱과의 전쟁 말이다 . . . . . 

 

도운튼 수로(水路)

죽은 자의 영역과 살아있는 자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에 있는 물줄기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는 전사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호주의 16세 도운튼 병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도운튼 수로에서 유유히 유영을 하고 있는 황금 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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