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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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에덴공원 : 2020. 7. 31

딜라일라 2020. 7. 31. 21:47

1960년대와 1970년대 말까지 젊은이들의 양지였던 추억의 에덴공원을 찾아가 보았다

지금의 부산대학교와 경성대학교 앞처럼 대학가 문화가 형성되지도 못했고 

시내의 남포동이나 광복동, 서면에도 청년들만의 공간이 없었던 시절에

에덴공원은 젊음의 낭만을 꽃피울 수 있었던 청년문화의 상징적 장소였다

 

낙동강 강변의 드넓은 갈대밭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고전음악 감상실 '강변'카페와  팝송을 틀어주던 '강촌'주점으로 젊은이들은 모여들었고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을숙도로 건너간 아베크족들은 저녁 노을 지는 을숙도 갈대속에서 낭만을 속삭였다

고등학교 때 부터 친구들과 에덴공원을 찾았던 나는

위스키 잔 속에서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등 형형색색으로 빛나던

'강변 칵테일'의 그 영롱한 아름다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1970년도 말부터 에덴공원 주변이 도시계획에 편입되면서 도로가 나고 집이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갈대밭은 매축되어 도시가 형성되면서 '강변'과 '강촌'도 뜯겨나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지금은 산 정상 부근 일부만 남아 그 옛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승학산에서 조망되는 에덴공원 모습>

도심 속 한가운데 섬처럼 외롭게 남아있는 에덴공원을 가락타운1단지아파트가 강을 가로막고 서 있고

낙동강을 가로지른 '낙동강하구둑'이 을숙도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사진상에는 보이지를 않지만, 더 오른쪽에는 옛날 을숙도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던 자리에

동산유지가 들어서 있다가 지금은 하단SK뷰아파트 단지가 그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옛날 을숙도로 건너가던 나루터라는 것이 실상은 나루터가 아니고

부산시 분뇨를 낙동강으로 흘려보내 처리하던 소위 '똥다리'였는데

우리는 그 '똥다리' 위를 코를 막고 걸어가서 나룻배를 탔다는 것이다

 

하단역 7번출구를 나와 10분여 걸어가니 도심 속 상가단지 가운데에 에덴공원 입구가 나온다

 

입구 건너편의 시가지 쪽 모습

 

조용한 숲 속 잘 단장이 된 길을 조금 걸어가니

 

공원안내도가 나오고

 

부산시민헌장이 있는 곳에서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은 고전음악실 '솔바람'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라 먼저 왼쪽부터 가 본다

 

정상에는 넓다란 공간에 체육시설들이 있는데

한 가운데에 축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절의 당간지주 같은 기둥이 두 개가 서 있는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 에덴공원이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정상에 일본군이 해안포대를 설치하여

포병부대가 주둔한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 흔적인지 모르겠다

 

 

갈림길로 돌아가서 '솔바람' 쪽으로 조금 이동을 하니 오태균 음악비가 나오는데

 

오태균(吳泰均, 1922~1995)은 부산 교향악 운동의 선구자로

연주가이며 음악교육자로서 부산 음악 발전에 현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또한, 나의 고등학교 선배로서 부산상업고등학교 27회이시다

 

오솔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면 길 옆에 '에덴苑'이라 적은 빗돌이 있는데 .....

 

1953년 부산중앙교회 장로였던 백준호가 이 땅을 사들여 공원을 조성하였고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에 비유하여 처음에는 '에덴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 뒤 자연스럽게 '에덴공원'으로 바뀌어 불렸다고 한다

'강변'카페와 '강촌'주점도 1963년경 백준호 장로의 아들들이 문을 열었다

 

고전음악실 '솔바람 음악당'이 있던 자리

옛 '강변'을 운영했던 백준호의 아들 백광덕이 공원 꼭대기의 옛 매점 자리에

1986년 야외 고전음악실 '솔바람 음악당'을 열어

 옛 '강변'의 맥을 이어오면서 에덴공원의 옛 정취도 살리고 있었고

우여곡절을 거쳐  2013년까지도 고 오태준 추모음악회 등을 열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그 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예전 '솔바람 음악당'의 청중석이었던 등나무 정원

등나무 그늘막 안에서는 동네 노인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화투나 바둑을 두고 있다

 

등나무 정원 옆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고 

 

연못 위에는 헐리고 없는 건물터가 있는데 이곳이 '솔바람 음악당'이 있던 자리였던 모양이다

 

몇년 전 자료검색을 할 때는 조그만 건물이 남아 있었고 대형 피아노까지 있는 사진을 보았는데

이젠 그 '솔바람 음악당' 마저도 자취를 감추었다

 

'솔바람 음악당' 건물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등나무 정원

 

어느듯 고목이 된 등나무 둥걸만이 흘러간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시비

 

'솔바람' 터에서 공원 끝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나오는 이 청마 시비는 옛날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理念의 푯대 끝에

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청마 시비를 뒤로하고  공원을 내려서는데 

낙동강 쪽 전망이 트이는 곳에는 아파트 단지의 건물들이 무심히 시야를 막고 서 있다

저 강 건너 을숙도는 내가 아내와 연애시절 첫 키스를 나누었던 아련한 추억의 장소인데.....

 

'솔바람'은 없어졌지만 곳곳에 그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공원을 다 내려와 올려다 본 모습

청마 시비만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만 ......

 

그 옛날 갈대밭이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저 뒤에 보이는 산이 승학산(乘鶴山)인데

에덴공원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다보면 '부산역사문화대전'이나 여타 백과사전에서 에덴공원을 설명하기를

'승학산 꼭대기에서 학을 타고 날아오른 신선이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하여 '강선대(降仙臺)'라고 불리던 명승지로 

다대포의 몰운대와 함께 팔선대(八仙臺) 중의 하나로 꼽혔던 곳이다'라고 안내되어 있다

그러나, 부산에는 팔선대라는 명승지가 검색되지 않고

몰운대와 함께 강선대가 <부산8경> 속의 하나로 언급되어 있는데

<부산8경>에서 언급하는 '강선대'는 에덴공원이 아니었고  사상 덕포동의 작은 동산 위의 오래된 당산(堂山)이었다

 

<부산8경>

제1경: 몰운대   제2경: 태종대   제3경: 신선대   제4경: 해운대   

제5경: 오륜대   제6경: 강선대   제7경: 겸효대   제8경: 의상대

(참고 : 조금 낯선 제7경 겸효대(謙孝臺)는 연산동의 배산(盃山)에 있다)

 

하단중학교

 

그 옛날 내가 걸었던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던 그 길 .....

 

그 길 끝에는 '강변' 음악실이 있었는데  지금은 유치원이 들어서 있다

 

옛 고전음악 감상실 '강변'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길메리유치원

옛 '강촌' 주점이 있던 자리는 식당이 들어섰다가 골프연습장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골프연습장은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  찾는들 무었하리.....  나도 이렇게 변했는데.....

쓸쓸히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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