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여행사진/여행사진(기타)

공수물공원(민영훈 부사 거사비) - 기찰공원 : 2022. 10. 7.

딜라일라 2022. 10. 8. 00:07

 

부산광역시 금정구 무학송로 13(부곡 2 255-8)에 있는 공수물 공원

이곳에는 동래부사 민영훈 거사비(閔永勳 去思碑)가 자리하고 있다

 

공수물공원

금정세무서에서 북쪽으로 100여m 거리에 도로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지점인 삼각지에 있다

 

공수(公須)란 마을명은 이 마을에 공수전(公須田)이 있는데에서 유래되었다

공수전은 고려시대 때 관청의 영선비, 출장 중인 관리의 숙박이나 접대비 등을

충당하기 위하여 마련해 놓은 밭을 말한다

, 동래부의 각종 공수물을 조달하는 공수전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기장 바닷가에 있는 공수마을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옛 검문소였던 북쪽의 기찰방(譏察房)으로부터 약1km 밖에 떨어져 있지않고

남쪽의 동래부 동헌으로부터도 직선거리 약3km이니 여기에 공수전(公須田)이 있을만도 하겠다

 

먼저 눈에 띄는 조각작품 하나

 

1989년 9월 장상만조각연구소에서 기증한 작품으로 작품명은 '번영'이다

 

 

동래부사 민영훈 거사비(閔永勳 去思碑)와 거사단(去思壇)

 

동래부사 민영훈(閔永勳)공은 1775(영조 51)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민종길(閔種吉)이다

식년시에 진사27위로 합격을 하였고

1814년 인정전에서 유생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 대해서도 합격을 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관직은 사간원대사간, 양주목사, 동래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동래부사 민영훈 공이 재임시절(18359~18373) 중1836년에

동래, 양산지방의 극심한 흉년으로 굶주려 있던 백성들에게 천 포대의 곡식을 풀어 만민구명(萬民求命)을 히였고

 

금정구 향토 문화재 제6호인  동래부사 민영훈 거사비(閔永勳 去思碑)

 

그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생전에 마을사람들이 그 은혜를 기리고저 헌종 4(1838)에 건립한 거사비다

두구.작장.남산 마을 주민들은 민영훈 부사 이임 때 젖은 길에 신발이 더럽히지 않도록

가는 길에 적삼을 벗어 그 위를 밟고 걸어가게 했다고 한다

 

거사비는 원래 조선시대의 옛 역로(驛路)였던

황산도(黃山道) 길목인 지경고개(지금의 녹동마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가

광복 후 도로확장공사로 파손되어 버려진 것을 노포동 작장마을 앞 공지에 세웠고

그후 1993년 현 위치로 옮겨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사비 옆의 거사단(去思壇)에는 거북 좌대에 비신 위 이수를 올린 거대한 거사비를 건립하여

그해(1993년)  9월에 제막식을 했다고 한다

 

비신 앞면 가운데 '부사민영훈공거사비 (府使閔永勳公去思碑)'라고 음각하고

좌우편에 1줄씩 4 2구 송덕시가 새겨져 있다

 

                                        迺賑迺鷁(내진내익)   이에 진휼하여 비로소 어려움을 잘 견디게 하여

                                        活萬人命(활만인명)   만 사람의 생명을 살렸네

                                        設屯祛瘼(설둔거막)   둔전을 설치하여 고통을 없앴으니

                                        百世歌詠(백세가영)   백세토록 칭송의 노래를 읊조리리다

                                                                              (해석: 황구/ 기장향토문화연구소장)

 

 

 

새로 중수한 거사비의 전면

 

 

왼쪽 측면

 

 

뒷면

 

 

오른쪽 측면

 

 

동래 칠산동에는 민영훈 생사비(生祠碑)가 있지만 그곳은 나중에 찾기로 하고

먼저 가까이에 있는 옛 검문소 자리인 기찰공원으로 가 보기로 한다

기찰공원까지는 약1km 거리라 천천히 걸어가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기찰로 가던 중 오른쪽 윤산 터널 위에 자리잡고 있는 금샘도서관이 보인다

 

옛 고지도에 십휴정 기찰(十休亭 譏察)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거기가 기찰포교(譏察 捕校)가 주재하던 곳이고

지금은 그 자리에 금정농협 기찰지점이 차지하고 있다

옛 검문소인 기찰방( 譏察房)에는 기찰포교가 주재하면서 통행자나 신분, 물품 등을 검문검색하였다

 

그리고, 기찰에는 물맛과 수질이 좋아서 오래전부터 술을 빚기 시작했는데

술맛 좋기로 이름난 기찰탁주는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철마와 동래장 사이의 연결통로였던 회동수원지를 통해  동래장을 오가던 철마사람들이

중간 지점인 기찰에서 잠시 다리품을 풀면서 마시곤 하던 것이 기찰탁주의 번성에 일조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금정농협 조금 위  금정경찰서 부곡3 치안센터 바로 옆에 아담한 기찰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나무그늘 아래에 벤치가 놓여 있고

 

운동기구 몇 개와 함께 어린이 놀이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참고사진>  옛 상춘정(賞春亭)터인 동래유치원 안에 있는 부사 민영훈 생사비(生祠碑)

2기의 생사비(生祠碑) 와 3기의 거사비(去思碑) 중 하나인데, 모두 동래성 안에 흩어 져 있던 비를 모은 것이다

 

부사 민영훈 생사비(生祠碑)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