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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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작원잔도길-뒷기미나루

딜라일라 2019. 4. 11. 22:43

아래의 답사기는 2015년 11월 30일 발행한 이효준의 제2 기행수필집인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다'를 참고로 삼아 사진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글의 많은 내용은 동 수필집에서 발췌, 참고하였습니다

 (2019. 5. 25 追記)


작원잔도길 답사를 끝내고

이제는 삼랑진 강변을 따라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 선생의 소설 속 현장인 '뒷기미나루'까지 답사를 하기로 한다 


삼랑진역에서 왼쪽으로 굴다리를 지나면


송지시장이 나오고  시장 앞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다가 제방 위로 올라간다




제방 위에서 읍내 쪽을 보니 해발 284m의 매봉산이 눈에 들어온다

삼랑진의 학교 교가에는 빠짐없이 들어간다는 삼랑진의 진산이다


삼랑진 시내 앞의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는 5개가 있는데

제일 먼저 만나는 이 다리는 낙동대교로 김해-청도를 잇는 중앙고속도로가 지나는 다리다

  


제방 오른쪽 매봉산 자락에 지금은 폐쇄가 된 낙동강역이 보인다



(폐쇄가 되었지만 역사는 온전히 보존이 되고 있는 구 낙동강역)

제방을 내려와 가까이 다가가보니 펜스 사이의 문이 열쇠가 채워져 있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1906년 세워진 간이역인 낙동강역은 삼랑진역과 불과 1.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낙동강 수로를 타고 모이는 조곡과 농산물 등을 철도편으로 편리하게 수송하기 위해 일제에 의해 세워졌으니

수송이 아니라 수탈을 위함이었으리라




삼랑진역을 지나면 두번 째 다리인 삼랑진교가 나오는데

2008년에 개통된 저 다리는  김해와 청도를 잇는 국도58호선이 지나는 다리다


강 건너편에 김해의 무척산과 그 아래 생림면의 마을이 보인다


강변 제방 옆을 장식하고 있는 라일락 나무의 꽃내음이 코를 향기롭게 한다






세번 째 다리인 구 낙동철교는 지금은 폐쇄된 폐철교이다



폐철교 너머로 낙동인도교가 보이는데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고 불린다


폐철교는 레일바이크 길로 이용을 하는지 다리 위로 레일바이크 두 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네번 째  다리인 낙동인도교는 예전에는 기차가 다니던 철교였는데

지금은 차 한 대만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다리로

다리 저쪽에서 차가 오면, 이쪽에서는 차가 정지해야만 하는 다리로

차량 이용은 별로 없고 인도교의 역활을 더 많이 하고 있는 다리인 것 같다


삼랑진의 다섯 개 다리 중에서 가장 정감이 가는 다리로

다리의 트러스 구조물이 진짜 콰이강의 다리와 비슷해서 같은 이름의 별칭이 붙었을 것이다


삼랑리 2km의 강변에는 삼랑나루, 조창나루, 뒷기미나루가 있는데

구 낙동철교와 콰이강의 다리 사이에 삼랑나루가 있었다

삼랑리에는 영조41년인 1765년에 후조창이 세워졌는데

후조창은 밀양, 양산, 현풍, 창녕, 영산, 울산, 동래의 7개 군현의 세곡(稅穀)을 징수하여 보관하던 국가물류창고다

수납된 세곡은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으로 보내졌고

삼랑리에는 후조창의 관원들이 공무를 보았던 차소(差所)와 선주들이 근무하던 선청(船廳),

 관비들의 숙소, 창고, 주막, 여인숙, 점포, 저자거리로 번잡하였다


한때는 이 강변이 번성한 나루였지만 지금은 고기잡이 보트 몇 대만 쓸쓸하게 매여 있다


그렇지만 근처에는 횟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이 보이고, 제법 넓직한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봄철 특미라는 귀한 웅어회를 팔고 있는 횟집들이 많다


횟집들을 지나 조금 걸어오면 차와 음료 및 향어회를 파는 횟집이 나오는데


횟집 바로 옆에는 신 낙동철교가 지나고 있고



이 횟집 자리가 바로 조창나루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민가도 인적도 드문 산자락의 강변일 뿐이지만

이 부근의 내부마을에 후조창이 있었고 이 위의 산 꼭대기를 지금도 조창만댕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섯번 째 다리인 신 낙동철교


마침 KTX 기차가 다리 위를 지나고 있다


조창나루가 있던 횟집 건너편 언덕에는 여흥 민씨의 재실인 오우정이 있다



삼강사 비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여흥 민씨 오형제의 두터웠던 효성과 우예,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재실





오우정이 있는 자리는 옛날에 삼랑루가 있었다는데

아래로 내려다보는 낙동강의 풍경이 절경이었을 텐데 지금은 다리들로 가려져 강이 보이지 않는다


오우정 옆에는 비석껄이라고 부르는 곳에 여러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공덕비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세우는데

옛날에는 김해에서 조창나루로 넘어 온 길손들이 이 고개를 넘어 밀양과 서울로 걸어갔다고 한다



이 비석들은 조선 후기 이곳의 후조창과 이 지역 주민들과 관련된 수령과 관찰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공덕비다





조창나루에서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



강변에 나루터횟집이 나오는데 여기가 뒷기미나루가 있던 자리다

뒷기미는 뒤쪽 갯가에 위치해 있고, 산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생긴 지명으로

뒷개뫼(後浦山)에서 온 말이고

오우진나루라고도 불렀다는데 오우진은 아까 조창나루 앞의 여흥 민씨 五友선생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요산 김정한 선생의 단편소설 '뒷기미나루'의 현장으로

강 건너 밀양 상남면 사람들이 삼랑진장에 갈 때 이용하던 나루였다

소설 뒷기미나루는 1983년 KBS의 TV문학관에서 극본으로 방영이 되었고

대입수능 국어문제에도 출제가 되었다


횟집 옆에서 보면 오른쪽의 밀양강이  왼쪽의 낙동강과 합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낙동강 하류에서 바다물이 밀려오고, 진주 쪽의 낙동강 상류의 강물과 밀양강의 세(三) 물결(浪)이 만난다고 하여

삼랑진(三浪津)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뒷기미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

우리님 오시는 데 마중 갈까나

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리

임을랑 보내고는 난 어찌 살라노

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


뒷기미나루를 끝으로 삼랑진 세 개의 나루터는 역사속에 묻어놓고 삼랑진역으로 돌아간다


역에 오니 부산가는 기차가 6시 22분에 있는데 1시간 30분이나 시간이 남는다

역 앞의 택시 기사에게 맛있게 잘하는 돼지국밥집을 물어보니 역 바로 옆에 있는 이 집을 추천한다


섞어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남는 시간을 때운다



등록문화재로 남아 있는 삼랑진역의 급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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