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등반사진/부산,경남의 산

삼랑진 만어산(670m) : 2009. 9. 1.

딜라일라 2017. 12. 13. 19:17



오늘은 산행이 목표가 아니라 만어사를 관광하기 위해 승용차를 가지고
부산-물금-원동-삼랑진을 경유하여 만어사로 혼자 향했다

 

가는 도중 화제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서 찍은  선암산과 매봉 전경


오봉산 전경도 보이고 특히 작은오봉산에 있는 팔각정도 보인다

 

천태사 일주문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원동을 지나  삼랑진에 가까이오자 드디어 만어산이 보인다

 

만어사 절 밑에 있는  바위너덜겅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만어사 전경


화요일 평일이라  산사는 고요한 정적에 쌓여있다

 

 대웅전


요사채


미륵전


종각


절 마당 한가운데 있는 키 큰 나무

 

만어사 소원석

키 큰 나무밑에는  소원성취가 되려면  아무리 힘껏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작은 돌이 있다

주차장에 시원한 그늘과  함께  너덜겅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조망을 주는 나무


가까이서 본 미륵전

(만어산으로 가는 등산로는 미륵전 오른쪽 뒤에 있다)

 

만어사 창건 유래와 미륵전 안에 있는 미륵바위에 대한 안내판

(용왕의 아들이 미륵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미륵전을 지으면서 미륵바위의 뒤쪽부분은 건물밖으로 남겨두고 있다

魚山佛影 : 만어사 절 앞에 펼쳐진 거대한 돌너덜 지대

(미륵바위가 된 동해 용왕의 아들을 따라오던 수많은 고기떼가  크고 작은 돌이 되었다는 전설)

 


일부 돌들은 드드리면 종처럼 맑은 쇳소리가 난다고 하여 鍾石이라고도 한다
 



만어산 정상 조금 못미처 있는 이동통신 중계소 (SK, 부일이동통신)


위쪽 SK 중계소 철망옆에 정상으로 가는 작은 길이 열려있다

 


이 바위 왼쪽을 돌아가면 바로 정상이다


만어산 정상 (미륵전에서 약 20 여분 소요)



남쪽으로는 오른편의 금오산과 그 너머 에덴벨리 스키장이 보인다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김해 무척산

 

북쪽으로는 멀리 영축산이 보인다

 


거북이 머리를 닮은 바위

 







안태호와 멀리 보이는 만어산 원경

 

임경대(臨鏡臺)
 

임경대의 원래 자리는 이곳이 아니고 임경사로 올라가는 산기슭에 있었는데
아직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양산시에서 편의상 경치좋은 이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임경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절경
 

임경대 맞은편 오봉산 바위암벽 밑에있는 신라시대 최치원의 사연이 어려있다고 하는

臨鏡寺가  조그맣게 보인다

(실제로 가보면 조그맣고 낡은 볼품없는 암자인데 거기에도 바위벼랑에 임경대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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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은   '어산에 어린 부처의 그림자'를 뜻한다.   어산은 만어산이다.   이 만어산에 부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자가 어린다니, 참으로 흥미롭다.   만어산은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자성산은 '자비가 이루어지는 산'을 뜻하니,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아야사산의 '아야사'는 '마야사'가 옳으며,  이는 풀이하면 '어(魚)'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아야사산은 '마야사산'이 되니, 그 소리는 '만어산'에 가깝고 뜻도 '어산'이 된다.

 

만어산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에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다스릴 때였다.

이 나라 안에는 玉池(지금의 밀양호)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독룡이 살고 있었다.

독룡은 만어산에 있던 다섯 나찰녀(羅刹女)와 사귀었다.   그래서 때때로 천둥을 동반한 비가 쏟아져 4년 동안 오곡이 여물지 못했다.

왕은 주술로써 막으려 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옥지에 살던 독룡은 본래부터 '해독을 끼치는 용'이 아니었다.  가락국에 살았던 사람들이 고대부터 받들었던 용신(龍神)으로, 토착신이었다.   중세에 불교라는 보편종교가 들어오면서 서서히 배척되면서 독룡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악귀(惡鬼)인 나찰녀를 만나 사귀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녀는 본래 바다에서 사는데,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만어산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독룡과 나찰녀들은 중세가 되면서 악신으로 내몰렸으므로 고대의 방식인 주술로써는 퇴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처를 청하여 설법으로써 물리칠 수밖에 없었다.

 

부처는 설법을 하였고, 그제야 나찰녀들은 오계(五戒)를 받았다.   오계는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신자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금계(禁戒)로,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음란한 짓을 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 등이다.   오계를 받은 것은 불교에 귀의했다는 뜻이다.

 독룡과 나찰녀들은 불교에 귀의하면서 악신이 아닌 수호신이 되었고,  그로부터는 재앙이 없어졌다.    독룡과 나찰녀는 모두 강이나 바다와 연관이 있는 신격이다. 그런 신격들이 불교에 귀의했으니,  그들을 따르던 강이나 바다의 생물들도 따라서 귀의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어산불영>에서는 '동해의 고기들과 용이 마침내 골짜기 속에 가득 찬 돌로 변하여 각기 종과 경쇠의 소리가 난다'라고 적고 있는데,  바로 그런 일을 두고 한 말이다.   만어산의 만어사 앞 골짜기에는 돌들이 가득한데, 마치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는 연어들처럼 산꼭대기를 향하고 있다.         만어사에서 멀리 바라보면, 운해(雲海) 사이로 낙동강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물고기들과 용은 나찰녀처럼 만어산에 오르기 전에 낙동강을 따라 올라왔다.   만어산을 내려가서 낙동강 줄기를 따라 하구로 가면, 강물은 부산 다대포(多大浦) 앞에서 바다와 만난다.   다대포는 동해와 남해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동해의 고기들과 용은 바로 이곳을 거쳐서 만어산에 이르렀다.  만어는 곧 '온갖 물고기들'을 뜻하니,  이는 그대로 만물(萬物)과 통한다.   여기서 만물은 온갖 유정물(有情物)이니, 곧 중생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려고 고해(苦海)에서 거슬러 올라온 물고기들과 용은 곧 백성과 왕을 상징한다.   종과 경쇠가 되어 소리를 냈다는 것은 열반에 들었다는 뜻이다.   만어산에서 물고기들과 용이 번뇌를 떨어내고 해탈을 하였으니,  만어산은 바로 피안(彼岸)이다.   이로써 나찰녀가 살던 만어산은 불교의 영산(靈山)이요 성지가 되었다.

 

<어산불영>에는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 나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 부처가 야건가라국(耶乾訶羅國)의 아나사산(阿那斯山)에 이르렀더니 , 다섯 나찰이 여룡(女龍)으로 변하여 독룡과 사귀며 서로 우박을 내리고 난폭한 행동을 하였고,  이에 기근과 질병이 4년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왕의 요청으로 부처는 그 문제를 해결하였고,  용왕과 나찰녀는 부처에게 예를 드리면서 계율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만어산의 이야기와 거의 같다.  그런데 '관불삼매경'에는 더욱더 흥미로운 대목이 이어지고 있다.   계율과 가르침을 받은 용왕은 자신의 근기가 얕아서 최상의 오묘한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부처에게 늘 그곳에 머물러 주시기를 청했다.  그러자 부처는 용왕에게 나찰이 있던 석굴을 시주하면 거기에 천오백 년 동안 머물겠다고 말하였다.     부처는 몸을 솟구쳐 석굴의 돌 속으로 들어갔고,  이에 돌은 맑은 거울과 같아졌다.   부처는 돌 속에 있으면서 밖으로 빛을 나타냈는데,  중생들이 볼 때는 멀리서 바라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부처가 돌 속으로 들어간 것은 곧 열반에 든 일을 상징한다.   돌은 부처가 깃들면서 맑은 거울이 되었고,  이 맑은 거울은 중생의 불성을 비추는 거울로서 곧 불법을 뜻한다.   돌 속에서 부처가 밖으로 빛을 내는 것은 곧 설법하는 일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부처가 열반에 든 뒤에도 그 가르침은 남아서 법이 되어 중생을 가르치고 이끌고 있다는 의미다.

 

이로써 '만어산에 어린 부처의 그림자'가 뜻하는 바가 명확해진다.   역사적 존재로서 부처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만어산에는 진신(眞身)이 없다.  다만 부처가 남긴 가르침, 그 법이 그림자처럼 남아서,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들릴 듯 들리지 않고 있다.    이제 보거나 듣는 것은 오로지 중생에게 달려 있다.

 

- 발췌  부산일보 : 정천구(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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