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등반사진/경상북도의 산

경주 명활산(253m) - 힌등산(268.9m) : 2024. 5. 9.

딜라일라 2024. 5. 10. 20:13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는 35악을 두고 명산대천에 대··소로 구분해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대사를 지낸 3은 월성 주위의 소금강산(176.7)과 혈례산, 명활산(明活山·253)이라 한다

그만큼 신라에서는 왕경을 지키는 산으로 명활산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경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경주 역사 유적지구로 등재된 곳이 다섯 곳 있는데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와 오늘 답사하는 명활성 산성지구다

 

 

명활산과 힌등산, 명활성을 오른 후에는

인근의 설총묘와 보문사지의 유적과 국보 제37호인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답사하였다

 

 

경주터미널 건너편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약15분간 달려 남촌마을입구 정류장에서 내린다

 

 

09:17   버스정류장 출발

 

 

오늘의 목적지인 명활산이 저기 보인다

 

 

09:33   진평왕릉 입구

 

 

09:41   진평왕릉(眞平王陵)

 

 

진평왕(眞平王)은 신라 제26대 왕으로

진흥왕(眞興王)의 장손이며 작은아버지인 제25대 진지왕(眞智王)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보문정사(普門精舍)

정헌공(定軒公) 휘 종상(鍾祥/ 1799~1870)이 1840년경에 건립하여 

후진교육과 학문에 정진하던 곳이다

 

 

09:51   양지마을 입구

 

 

진평재(眞平齋)

진평재 현판에 '진리와 평화를 사랑하는 집'이라고 부기되어 있다

 

 

'보문마을길 50' 번지  주택을 오른쪽으로 빙 돌고

 

 

펜션 포에버 앞을 지나서

 

 

10:04   산행 시작

명활성 탐방로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 3발굴지 방향으로 오른다

왼쪽은 나중에 북문지와 작은명활산을 지나 하산할 지점이다

 

 

탐방로 입구 오른쪽에 두툼하게 생긴 언덕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무너진 명활성(明活城) 흔적

 

 

명활성 흔적

 

 

10:19   김해 김씨 가족묘 앞 이정표 (힌등산 갈림길)

명활성 탐방로는 직진하는 길이지만, 먼저 왼쪽으로 큰명활산을 오른 후에 힌등산까지 갔다가 와서

그 다음에 탐방로를 따라 3발굴지로 갈 예정으로 한다

 

 

짧은 거리의 큰명활산을 오르다가 곧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10:25   넓은 터에 무덤 1기가 있는 큰명활산(大明活山) 정상(253m)이 나온다

산행시간 : 1시간 8분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 이제는 힌등산으로 간다

 

 

힌등산 가는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칡넝쿨과 잡목이 우거진 숲 속에서 고생을 하다가

능선 위에 뚜렸이 나있는 등산로를 찾아 그 길을 따르니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묘 4~5기가 있는 넓직한 묘역으로 올라서게 된다

 

 

월성 김씨와 경주 김씨 묘

 

 

동쪽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보문단지와 그 뒤에 멀리 길게 드러누워 있는 무장산 능선이 보인다

 

 

넓직한 묘역 왼쪽으로 등산로를 따라가면 길 오른쪽에 오래된 무덤이 한 기가 보이는데 

무덤 뒷쪽이 바로 힌등산 정상이다

 

 

11:07   힌등산 정상(268.9m) / 산행시간 : 1시간 50분

 

 

11:27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 이제는 탐방로를 따라 3발굴지 방향으로 간다

 

 

명활성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이 보문호와 보문단지가 보이고

 

 

11:59   3발굴지에 닿는다

 

 

맞은편 약산에서 부터

(약산은 2019년 12월에 소금강산-금학산-약산-섯갓산으로 산행을 하면서 지나간 적이 있다)

 

 

발아래 북천변의 '경주 동궁원' 뒷쪽으로  멀리 희미한 낙동정맥 능선과 

 

 

보문댐 뒤로는 천북면 서산의 풍력단지가 펼쳐진다

 

 

줌인한 풍력단지

 

 

3발굴지에서 3~4분 후 정토암이 내려다 보이더니

 

 

이내 정토암으로 내려선다

정토암 오른쪽 간이화장실 앞에 탐방로 이정표가 있다

 

 

시멘트로 된 법당 건물이 요상하게 삼면이 다 막혀 있다....  불사를 기다리고 있는건가

 

 

석성 흔적을 보여주는 널브러져 있는

 

 

 

2발굴지

편안하고 너른 길에는 야자매트까지 깔려있어 걷기 편하다

 

 

일부이지만 산성을 복원하였다

 

 

 

1발굴지

 

 

1발굴지에서 4분여 완만하게 내려가면 복원한 치성(稚城)이 보이더니

 

 

이내 넓은 평지에 내려선다

경주 월성을 수리하는 13년간 임시 궁궐로 사용하였을 만큼 넉넉한 넓이다

 

 

12:21   명활성(明活城)

명활성은 동해에서 신라 왕경으로 들어오는 왜구를 막는 역할을 했다

삼국사기에 실성왕(實聖王) 4(405)에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 하며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18(475)부터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10(488)까지는

월성(月城)을 수리하는 동안  이곳을 임시 궁궐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펌)

 

 

북문지(北門址)

 

 

치성(稚城) 100여m를  포함한 북문지(北門址)는 2017년에 일부 복원되었다

북문지 발굴 과정에서 많은 기와 조각과

문루에 3.6너비의 문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확쇠, 따쇠, 쇠못 등이 나왔다고 한다

 

 

북문지 동쪽,  북문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는 반원형 치성(半圓形 稚城)

곡성(曲城)이라고도 한다

 

 

성의 둘레는 약6km로 토성(土城)과 석성(石城)이 함께 있는데

석성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한 신라 초기의 축성 방식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2013년 6월 25일부터 11월 30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선덕여왕 때 상대등 비담과 대아찬 염종이 이 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에게 평정되었다

명활성은 5세기에 성을 쌓고 개축을 이어왔으나  647년 비담의 난 뒤에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

 

 

성벽을 가로질러 성벽 서쪽 끝 산등성이로 올라가는데

초입에 약 1, 2높이 사각 돌기둥과 이정표가 있다

 

 

돌기둥은 일제강점기에 세운 조선총독부 표지석이고

여기저기 깨져 있으나 명활산성과 조선총독부 글자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산길은 솔숲길로 작은 명활산 능선을 탄다

 

 

 

나무 사이로 모습을 보이는 작은 명활산

 

 

긴 계단길 오르막 끝에 나오는 편편한 길

야자매트가 깔린 너른 길 옆 곳곳에는 잠시 앉아서 쉬어갈 수 있도록 누군가가 커다란 돌들을 배려해 두었다

 

 

탐방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는 왼쪽으로

 

 

12:47   작은 명활산 정상 / 산행시간 : 3시간 30분

 

 

작은 명활산을 내려와 작은 개울에 걸린 통나무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12:59   오전에 출발한 산행 시작지점으로 원점회귀를 한다

 

 

진평재 건물

 

 

13:11   다시 되돌아 온 양지마을 입구 / 총산행시간 : 3시간 54분

이제부터는 인근의 설총 묘를 비롯한 유적지 답사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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