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등반사진/부산,경남의 산

부산 석대 추마산(77.2m)과 반여동 상리마을 : 2024. 3. 7.

딜라일라 2024. 3. 7. 23:03

 

지난 2022년 12월에 반여동의 옥봉산을 올랐다가 내려왔을 때 마주 보이던 석대 추마산을 올랐다

사실 추마산은 도심속의 야산이라 산행이라 할 것은 없고 옥봉산과 연계해서 탈 만은 하지만

그때는 추마산에 대한 사전 자료가 없어 오르지를 않았던 곳이다

오늘은 추마산과 함께 인근 반여동에 있는 효자마을인 '상리마을'을 함께 답사할 겸 길을 나섰다 

 

 

<참고사진> 장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옥봉산과 추마산

 

 

지하철4호선 금사역에서 하차하여 수영강 위의 동천교(석대다리)를 건너면서

마주 보이는 추마산 전경

 

 

장산

 

 

농협 반여센텀지점과 해운대우체국을 지나 '반여농산물도매시장 정류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해운대우체국 쪽 절개지에 산으로 오르는 시멘트 길이 있지만 철책펜스로 막혀있고

입구의 철책문도 잠겨져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길은 산 위의 한전 송전탑과 배전시설로 올라가는 통행로였다

 

 

옹벽을 넘어 산으로 오르는 곳이 두 군데나 있는데

 

 

좀 더 산길이 뚜렷해 보이는 정류장 바로 뒤에서 산길로 진입한다

 

 

 

희미하나마 제법 뚜렷해 보이는 산길을 따라 오르니 산길은 우측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지라

정상 방향 길없는 왼쪽 산사면을 개척산행으로 치고 오르니

이윽고 철탑 아래의 시멘트 옹벽이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

 

 

난간을 넘어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른다

 

 

창고같은 작은 구조물을 지나고 (벽면에, 화재에 대비한 소화전이 보인다)

 

 

철문이 굳게 잠겨있는 배전시설 앞에서 왼쪽으로 간다

 

 

나무숲과 송전탑 사이로 건너다 보이는 옥봉산 모습

 

 

그렇게 산행 시작 10여분 만에 싱겁게 해발 77.2m인  추마산(秋馬山) 정상에 닿는다^^

 

 

삼각점 표식이 있으나 낙엽에 쌓여있어  발끝으로 대충 휘저어 보아도 삼각점은 드러나지 않고

 

 

최남준 님의 추마산 정상 표지기가 걸려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난 하산길은 제법 뚜렷하게 나 있어 

 

 

완만한 내리막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니

 

 

 

양쪽으로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왼쪽 아래에는 농가인듯한 건물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크레인 소리가 나는 공장인듯한 시설물이 보여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그렇게 내려선 곳은 고철을 수집판매하는 금강스틸 야적장이었고

 

 

해운대구 장애인근로사업장 앞 도로를 따라 석대화훼단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 도로는 석대에서 해운대수목원 옆을 지나 정관산업로로 연결되는 '석대로'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저 앞에 장산의 주봉이 모습을 보인다

나중에 답사할 반여동 효자마을인 상리마을이 저 주봉(胄峯)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장산 주봉은 반여1동 주민들의 제 이름찾기 운동 끝에 위봉(胃峯)에서 주봉(胄峯)으로 이름을 되찾았고

2012년 10월 11일 반여1동 주민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봉이라는 이름의 정상석도 설치하였고

10월 17일에는 정상표지석 설치를 기념하는 '반여1동민 안녕기원제'도 열었다

반여동 주민들에 따르면 장산의 산세가 강해 예로부터 장군이 많이 배출됐다고 해서

 정상의 이름이 '주봉', '장군봉', '투구봉'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백성의 기를 꺾기 위해 일제가 고의로 '주봉'을 '위봉'으로 이름을 바꿔 불렀으며 

투구란 뜻인 주(胄)를 밥통 위(胃)자로 슬쩍 바꿔 불러 장산의 지세를 눌렀다는 것이다

동 주민센터는 국립지리정보원에 질의해 '주봉'이 정확한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참고사진> 2013년 1월 30일의 장산 주봉

 

 

 

 

 

 

도로를 따라 반여동 상리마을을 찾아 가면서 도중의 석대동 하리당산(下里堂山)을 찾는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석대천에 반석이 깔려있는 높은 너럭바위를 석대(石臺)라 하였는데

이 석대를 기점으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 하리(下里)였고

윗쪽에 있는 마을을 상리(上里)라 불렀다

그러니까 하리는 지금의 추마산 자락 아래 석대 화훼단지와

반여농산물도매시장 일원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리 당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하리 당산(下里 堂山)

 

 

 

2단으로 쌓은 석축 위에 옆으로 쓰러질듯 비스듬히 서 있는 당산나무와 .....

 

 

시멘트로 된 제단이 있다

제단 앞에는 최근 누군가가 기도를 드린 흔적을 나타내는 종이컵에 보이고

 

 

몇 백년은 족히 먹었을 것 같은 우람한 둥치의 소나무에는 치성을 드린 대나무와 새끼줄이 감겨있고

뽀족하게 깎은 나무조각이 함께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는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당산도 퇴락하여 관리조차 제대로 안하는지

당산 뒤의 언덕배기까지 사람으로 인해 훼손이 되고 있었다

 

하리당산 조금 옆에는 유명한 석대 원조추어탕집이 있는데 가오리 찜도 맛있고

오래전부터 집사람과 자주 이용하던 곳인데 근래에는 찾은지가 오래 되었다

 

 

도로를 따라 수영강 방향, 산행을 시작하였던 쪽으로 가는데 옹벽 위쪽으로 길이 있고

혜광사라는 절집이 보여 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길목에는 광주 부윤을 지낸 영양(潁陽) 천(千)씨 묘역 안내석이 있다

부윤(府尹)은 조선시대 종2품의 벼슬이다

 

 

산 윗쪽으로 잘 조성된 묘역도 보인다

 

 

혜광사 일주문

 

 

혜광사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어느 집안의 재실(齋室)이 먼저 나오는데

대문에는 지회문(志會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대문 바로 앞에 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석축 사이로 열려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길을 통해 추마산을 오르내릴 수도 있겠다

 

 

담장 너머로 시선을 돌리니 석계재(石溪齋)라는 재실 이름이 걸려있고

어느 집안의 재실인지는 서핑을 해 보아도 찾지를 못했다

 

 

혜광사는 재실과 담벼락을 맞붙은 뒷쪽에 있는데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 보지를 못하고

 

 

대문 위로 카메라를 들이밀어 주인없는 혜광사의 이모저모를 담는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여늬 큰 사찰과 다름없게 없을 것 없이 여러가지 성물들을 갖추고 있다

 

 

 

 

 

추마산과 하리마을 이곳저곳 답사를 마치고 이제 효자마을로 이름이 났던 상리마을로 발걸음을 돌린다

 

반여농산물도매시장과 풍산금속을 지나

 

 

장산자락 주봉 아래에 터를 잡고 있는 반여동 상리마을로 들어선다

석대천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지금의 반여동과 반송동의 경계를 이루는데

석대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조성되어 있어

석대천을 중심으로 상리마을과 하리마을 등의 자연부락이 자리를 잡았다

 

 

상리마을네는 영양 천씨 정려각과 창원 구씨 부사공파 구주성 정효비가 있어 

옛부터 효자마을로 이름을 날리었다고 하기에

그 정려각(旌閭閣)과 정효비(旌孝碑)를 만나보기 위함이었다

 

 

이곳 상리마을에는 영양 천씨를 비롯하여

창원 구씨, 밀양 손씨, 경주 이씨, 경주 김씨 등의 성씨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상리마을회관을 찾았으나 건물은 텅 비어있고

 

 

마을 경로당에도 인기척이 없다

나이 지긋한 마을주민 두 분에게 물어보아도 정려각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마을 뒷쪽 롯데택배 물류시설이 있는 인근에

재실같은 커다란 기와건물이 보여 다가가 보니

 

 

여산 송씨(礪山 宋氏) 원윤공파의 재실이었다

난감하다.....  정려각은 도대체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길 건너 남평 문씨(南平 文氏) 화수회관 뒤로도 가보지만

 

 

버젓한 상리마을 이정석만 보이고 정려각은 보이지를 않는다

혹시나 해서 슈퍼 사장에게 물어보지만 대답은 글쎄다~

정려각 찾기는 오늘은 이것으로 포기를 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참고사진> 석대 상리마을 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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