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산행자료/등반상식

5대 적멸보궁

딜라일라 2018. 1. 17. 06:57



< 5大 寂滅寶宮 >

 

오대산 상원사 중대사자암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백덕산) 법흥사(영월)

함백산(태백산) 정암사(정선) 등 강원도 4곳과

경남의 양산 통도사 (최초로 모신 곳)

 

적멸(寂滅)이란 말은 불교에서 범어의 니르바나(Nirvana)를 의역한 말이다. 니르바나를 음역한 것이 열반(涅槃)이고, 의역한 것이 원적(圓寂)이며, 원적의 다른 말이 적멸인 것이다.

니르바나의 원뜻은 소멸 또는 불을 끈다는 것으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꺼 없애고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를 완성한 경지를 의미한다.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을 가리킨다.


법당 내에 부처의 불상을 모시는 대신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법당으로 바깥이나 뒷쪽에는 사리탑을 봉안

하고 있거나 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보궁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열었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다. 궁(宮)은 전(殿)이나 각(閣)보다 우위에 있다.

《화엄경(華嚴經)》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十方世界)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하였고, 부처는 법신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한몸이 되었다.

 

따라서 적멸보궁은 본래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적멸보궁의 편액을 붙인 전각은 본래 진신사리의 예배 장소로 마련된 절집이었다. 처음에는

사리를 모신 계단을 향해 마당에서 예배하던 것이 편의에 따라 전각을 짓게 되었으며, 그 전각은 법당이 아니라

예배 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았다. 다만 진신사리가 봉안된 쪽으로 예배 행위를 위한 불단을 마련하였다.

한국에서는 643년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중대사자암,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이 이에 해당된다.

이 중 태백산 정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친히 가져 온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

하였는데, 정암사의 적멸보궁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이라고 한다.

이들 5대 적멸보궁은 불교도들의 순례지이자 기도처로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신봉되고 있다. 그밖에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경상남도 사천시 다솔사(多率寺), 강릉 구룡사, 구미 도리사, 김제

모악산 금산사 등에도 적멸보궁이 있다.

< 법흥사 적멸보궁 >
“온 산이 다 부처님의 몸”
돌·풀 한포기도 곧 부처

◇법흥사 적멸보궁은 뒷산 어딘가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고 전하기 때문에 뒷산 전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에는 적멸보궁이라는 이름의 법당이 있다. 정면 3칸의 자그마한 규모이며 외관상으로는 특이한 점이 없는 평범한 건물이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가면, 불단 위에 응당 계셔야할 불상이 없이 바깥으로 창만 뚫려있다. 이런 류의 법당구조는 통도사 대웅전에서도 볼 수 있었다. 통도사 대웅전에 불상이 없는 이유는 창 밖으로 보이는 사리탑에 석가세존의 진신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불상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흥사 적멸보궁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뒷동산의 유려한 곡선 뿐이다. 뒷산이 불상 대신 모셔진 것이다.

석가세존께서 열반하신 쿠시나가라는 당시 마투라 족들이 지배하던 땅이었다. 대대적인 다비식을 끝내고 나니, 여덟 말에 해당하는 세존의 진골, 진신 사리를 수습할 수 있었다. 소문을 들은 주변의 일곱 나라 왕들이 몰려와서 사리를 나누어줄 것을 요청해 세존의 사리는 여덟 등분 되어 여덟 나라는 각각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니,

이를 근본 8탑이라 부른다. 

세존이 계실 때는 가람도 경전도 필요 없었다. 세존이 머무는 곳이 바로 가람이요, 세존의 말씀이 바로 경전이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자성의 종교지만, 일반 민중들은 구체적인 신앙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자성 구도는 철학적 종교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지식인에게나 가능하지, 지적 수준이 낮은 민중들에게는 난해하고 불가능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세존의 뼈와 정기가 화한 진신사리야말로 최고의 신앙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불교 초기에 일어났던 사리 전쟁은 자기 나라를 불교국으로 포교하려던 왕들의 전략적 목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유명한 아쇼카 왕은 후대에 일곱 나라의 탑(스투파)에서 사리를 꺼내어 그가 세운 8만개의 탑에 골고루 나누었고, 사리신앙은 온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사리신앙을 전파한 이는 자장율사다. 중국에 유학한 자장은 종남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세존의

의발과 진신사리 100과를 얻어 귀국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는 이 사리를 황룡사 9층탑울산 태화사, 그리고 통도사 금강계단에 나누어 봉안했다. 현존하는 곳은 통도사 금강계단 뿐이다. 그러나 다른 기록과 구전에 의하면, 자장은 여러 곳에 그가 가지고 온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했다고 전한다. 오대산의 중대암, 설악산

봉정암, 그리고 사자산 법흥사가 바로 그곳이라 한다. 또한 태백산 정암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통도사

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이다. 이들 5개소에는 적멸보궁형의 법당들이 세워졌고,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이외에도 대구 달성 용연사에도 적멸보궁이 있고, 사천 다솔사도 최근에 보궁을 만드는 등, 진신 사리와 보궁에 대한 신앙은 아직도 식을 줄 모른다. 

세존의 말씀은 교(敎)가 되었고, 세존의 마음은 선(禪)이 되었다. 교는 경전을 통해 기록되어 법보(法寶)가 되었으며, 선은 스님들을 통해 전해져서 승보(僧寶)가 되었다. 세존의 몸이요, 정신의 현현물인 진신사리는 불보

(佛寶)가 되어, 삼보를 구성한다. 그 귀한 보물이니, 진신사리에 대한 열망은 대단할 수 밖에 없다. 

법흥사 적멸보궁은 뒷산 어딘가에 사리가 봉안되었다고 전하기 때문에, 뒷산 전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어떤 인공적인 불탑보다도, 불상보다도 자연물은 위대하다. 세월이 지난다고 허물어질리 없고, 외적의

침입에도 도난당하거나 불타버릴 염려도 없다. 

자장이 가져왔다는 불사리의 진신 여부에 대해 의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세존이 열반한 뒤 1000여년이 지난 그 때에, 그리고 이국인 중국 땅에서 어떻게 100과나 되는 사리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면 어떻고, 사실이면 어떤가? 불보란 석가세존의 존재 자체이지, 뼈나 구슬과 같은 사리가 아니지 않은가? 물질인 사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장이 전해준 불보에 대한 신앙이 중요한 것이다.

 

사리는 단지 상징일 뿐이다. 법흥사 적멸보궁 뒷산은 사리신앙의 상징성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 거대한 산 속에 몇 톨의 진신사리가 흩어져 묻혀있다. 아무리 첨단 장비를 동원한다 해도, 이 산 속에서 사리를 찾는다는 것은 망망대해에 던져진 돌멩이를 찾는 것만큼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그러나 아무런 장비 없이도 우리는 쉽게 사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온 산이 부처의 몸이기 때문에, 뒷산에 널린 돌멩이 하나는 부처의 뼈요, 풀포기 하나는 부처의 모발이 된다. 법흥사 적멸보궁이 전하고 있는 뜻은 바로 이것이다. 그 좁쌀만한 사리를 왜 찾으려 하는가? 온 산이, 온 세상이 부처인데.

김 봉 렬<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 지리산 법계사 치아사리 >
인도에서 건너온 연기조사가 부처님 치아사리를 가지고 와서 봉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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