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산행자료/등반상식

삼천포 와룡산 이름의 유래

딜라일라 2018. 1. 17. 06:53

 

 

< 삼천포 와룡산 이름의 유래 >

 

와룡산이라는 이름은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용이 또아리를 틀고 비상을 준비하는 듯한 모양이라는 형태적 요인과, 고려8대 왕으로 등극한 현종의 어릴적 용을 빗대어 왕위등극의 야망을 내비쳤다는 사료적인 측면에 함께 근거했다고 알려져 있다. . 와룡산은 고려 제8대 왕 현종이 어린시절 노닐던 산이었다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주목 편등의 기록 등을 종합하면, 고려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이었던 왕욱이 자신의 조카인 제5대 왕 경종의 둘째 부인이면서 6대 성종의 동생인 헌정왕후와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다. 아들을 낳고 얼마지나지 않아 헌정왕후가 죽었고 조카비와 혼인한 죄로 왕욱은 사천으로 귀양을 갔다. 아들 순()은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성종에 의해서 궁중에서 키워졌으나, 자라날수록 사천으로 귀양간 아버지와 죽은 어머니를 그리며 쓸쓸하게 지내는 애처러운 모습을 보다 못한 성종이 유모를 딸려서 아버지가 있는 와룡산으로 순을 보내준다.

 

어린 아들 순()은 와룡사에서 즐겨 놀았다. 이후 유배생활 6년 만에 왕욱이 사망하자 홀로 남겨진 어린 아들은 궁궐로 옮겨졌다. 그때 죽은 아버지를 그리며 일곱 살 때 배방사에서 지었던 유명한 한시에 때가 오면 하루 아침에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를 것이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순의 마음속에는 이미 어릴 때부터 왕위등극의 야망이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어린 아이가 바로 고려의 제8대 왕인 현종이다. 현종은 거란의 외침때 강감찬으로 하여금 귀주대첩을 통해 물리치게 하고 기민구제책을 시행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현군. 순은 제5대 경종의 첫째 비이자 제7대 왕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로부터 대량군 시절부터 그의 영특함을 시기받아 강제로 승려가 되기도 하거나 암살공작 등의 갖은 고초와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왕위에 올라 가슴속에 품어오던 비룡승천의 뜻을 이루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유년기까지 갖은 고초를 겪었던 것이 훗날 제위에 올랐을 때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많이 펼친 밑바탕이 됐다는 설도 있다.

 

현종은 아버지 욱을 추모하여 짐의 아버지 안종이 칩거하던 곳이다. 사수현을 승격하여 사주(泗州)로 하라는 명을 내려 당시 일개 작은 현이었던 사천땅을 주로 승격시키는 파격적인 조치를 감행했다.

, 이곳은 궁지(宮旨) 들판에서 생산하던 쌀의 맛이 좋다하여 궁지들판의 일부를 궁장(宮庄: 왕궁에서 왕과 왕족이 소비하는 쌀을 생산하여 바치게 했던 농지단위 및 소속농민)으로 지정하여 관리해 오고 있던 것을 泗州 궁지들판의 궁장에 한하여 경지를 줄여서 본래 주인이었던 농민들에게 돌려주도록 하라고 하여 해지시켜 주었다.

 

현종의 잠룡(潛龍)기였던 어린 시절 즐겨 놀았던 곳이라고 해서 절 이름을 와룡사라 부르고, 산 이름도 와룡산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당시의 와룡사 터는 지금의 와룡동 와룡저수지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와룡산에서는 매년 4~5월이면 현종의 왕위등극과 같이 지역사회가 번성하고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와룡산 비룡제가 올려지고 있다.

 

 

 

'산행자료 > 등반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제8경   (0) 2018.01.17
용천지맥   (0) 2018.01.17
불교종단과 전각   (0) 2018.01.17
부산 5산 종주   (0) 2018.01.17
금오산   (0) 2018.01.17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