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여행사진/여행사진(기타)

동래문화기행 1) : 2016. 12. 27

딜라일라 2018. 1. 16. 12:41

 

동래향교

엊그제인 12월 25일 배산을 등산하고 연산동 쪽으로 하산을 하면서 '연산동 고분군'을 보았는데
이런 고분이 연산동에 있다는 것을 그동안 누구한테서도 들어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근50년을 부산에서 살아 온 나에게는 적지않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한번 가 보아야지 하던 복천동 고분을 관람할 겸 동래일원의 문화기행에 나섰다

 

700여년전 동래향교의 첫 건립지가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자리라고 하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래고등학교의 위상이 더 돋보인다

 

 향교의 정문인 반화루

 

학문을 강의하던 교실인 명륜당

 

역대 동래부사들의 치적을 칭송하는 불망비

정면 왼쪽에서 두번 째가 동래부사 정현덕의 흥학비다

 

동래지역의 사적지 곳곳에서 동래부사 정현덕의 발자취를 자주 보게 되는데

동래부사 정현덕(1810~1883)은 흥선대원군의 심복으로

1867년(고종4년)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 1874년(고종 11) 1월 이임하였는데

평균 재임기간이 2년 정도인 다른 부사들과는 달리 약7년간의 오랜 재임기간 동안

고을 수령으로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여러가지 공적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교학(敎學)을 진흥시켜 동래 땅을 추로지향(鄒魯之鄕)/공자.맹자의 고향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동래읍성을 개축하고 독진대아문도 중수하였을 뿐만아니라

금정산성의 동문과 서문을 재건하기도 하였다

 

동래 향교 안에는 정현덕 흥학비(興學碑)가 있고

범어사 숲속둘레길 입구를 비롯하여 금정산성 금성동의 국청사 입구와

낙동강 황산잔도길에는 정현덕 영세불망비(永世不亡碑)가 있으며

동래 칠산동에 태평원 시비(太平園詩碑)와 금강공원 내에 금강원 시비(金剛園詩碑)가 있다

 

 흥선대원군이 권세를 잃자 정현덕도 파직을 당해 귀양을 갔고 대원군이 재집권 한 뒤에는 복귀하여 형조참판에 올랐으나

대원군이 다시 쫓겨나면서 사람이 살기 힘든 외딴섬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일반적으로 명륜당과 대성전이 일직선 상에 있는 것과는 달리

동래향교는 2열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란다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현들을 모신 대성전

대성전 좌우의 東.西에는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두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우리 배천(白川) 조씨 重峯 선조님을 뵐 수 있었다

 

 

 

 

향교 앞에 있는 下馬碑

향교를 나와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 단지 옆으로 동래읍성을 향해 오르는데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 단지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옛 동래여고가 있던 자리였다

동래여고는 1987년 3월에 금정구 부곡동에 있는 지금의 자리로 학교를 이전하면서 

역사성 뿐만아리나 건축사적 가치도 있는 교사 건물을 그대로 이전하였다

 

부산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자비암을 들러보기로 한다

 

 

외관상으로는 초라한 절집으로 보이는데 무엇이 유형문화재인지 설명이 없다

 

 서장대로 가는 동래읍성 길

 

西將臺

 

 

서장대(西將臺)는 1980년 복원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기와집으로 동래읍성의 서쪽을 관찰하던 전망대이다

 

 

 

다음에 율곡전자상가 앞을 지날때 삼성대 표석을 확인해 보아야 겠다

<참고사진>  율곡전자상가 한 모퉁이에 세워져 있는 '삼성대터' 안내석

 

태평원 시비 안내문

태평원 시비는 지금의 동래유치원(동래구 칠산동) 안에 있다

 

<참고사진>  동래유치원 내에 있는  동래부사 정현덕의  태평원 시비(太平園 詩碑)

태평원(太平園)은 현 동래중학교 앞 쌍용예가 자리에 있던 곳으로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죄수를 사형시키던 곳이라 한다

이 비석은 한말에 부사 정현덕이 쓴 시를 새겨 태평원 안의 군사훈련장으로 쓰이던 만년대 자리에 있던 것을

1955년 동래기영회에서 현 위치인 동래유치 원으로 옮겨 두었다고 한다

(시비 내용은 생략함)

 

서장대를 지나 하산길 저 너머로 북문이 보이고
그 뒤로 정상에 북장대가 서 있는 마안산(馬鞍山)이 나타난다
마안산(馬鞍山)은 산의 모습이 말의 안장을 닮았다는데서 이름이 붙었다

조선 후기에 이 산에 별포군 200명이 군무하는 대포를 설치하였다고 대포산으로 불렸고

또, 두 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모습이 여성의 젖가슴을 닮았다는데서 유방산으로도 불렸다

 

북문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복천동 고분과 東將臺를 머리에 이고 있는 망월산(望月山)도 보인다

 

 

북문
마안산 기슭 명륜동과 복천동을 연결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장영실 과학동산

 

 

 

 

 

 

 

 

 

 

 

 

 

 

 

 

 

 

 

 

 

 

 

 

 

 

 

내주축성비(來州築城碑)

1731년(영조 7)에 동래부사 정언섭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1735년에 건립한 것으로

비문의 앞면에는 축성에 관한 사실을 20행으로 기록하였고, 뒷면에는 축성에 종사한 임원의 명단을 새겨놓았다

 

이제 북장대를 향해 마안산을 올라야 한다
 

학소대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법륜사가 있는 곳인데

나중에 산을 내려가 둘러볼 예정이다

 

 

 

마안산(馬鞍山) 정상(148.8m)의 北將臺

1999년 복원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1층 기와집으로 동래읍성의 북쪽을 관찰하던 전망대이다

 

 

마안산 정상에 서니 온 사방으로 조망이 확 터진다

 

 

 

 

부산 3.1독랍운동 기념탑 / 탑의 높이가 21.6m에 달한다

 

 

 

 

이제 망월산의 東將臺를 향해 가는데

보수공사 중인 人生門 바깥으로 나와 길을 건너 맞은편 산기슭으로 올라 가는데

이런 이정표가 있어 바로 동장대로 가게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동장대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게 되어있었다

알고보니 동장대는 충렬사를 통해 들어갈수 있었다

 

望月山(106m) 정상의 東將臺

 

다시 발길을 돌려 고분을 향해 가는데 아까 보지 못했던 이정표가 있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사진과 같이 인생문을 복원하여 그 위로 난 길을 통해

동래읍성 유적지와 동장대를 오고갈 수 있었으나

얼마전 부실공사로 성벽의 일부가 무너지는 바람에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고 한다

 

보수공사 중인 인생문(人生門)

 

임진왜란 때 이 문은 없었으나

지금의 인생문 쪽으로 피난을 간 사람은 모두 목숨을 건져 '사람을 살린 문'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당시 성내에는 무덤터를 둘 수 없어

동래성내에서 지금의 명장동에 있었던 공동묘지로 나아가는 유일한 문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인생무상'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