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등반사진/갈맷길, 해파랑길

해파랑길 37코스 후반~38코스 일부(上) (정감이마을-오독떼기전수관-장현저수지-모산봉-강릉 대도호부) : 2025. 11. 17.

딜라일라 2025. 11. 19. 15:09

 

3일째 오늘은 정감이마을을 출발하여 37코스 종점인 오독떼기전수관까지 갔다가

38코스 강릉시내 구간인 강릉대도호부관아까지 가서 2박 3일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오늘도 마지막 강릉시내 구간만 빼고는 처음부터 산길이다

 

 

 

8:04   정감이마을 출발

정감이마을 방문자센터 숙소에서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을 한다

오늘도 처음부터 산길이 시작되고 모산봉까지 넘어가는 평범하지 않은 구간인데

모산봉을 내려와서부터는 산길을 벗어나 평탄한 도로에서 마무리를 하게된다

 

 

정감이마을 등산로 입구

첫날 심곡항에서부터 정동진까지 삿갓봉을 넘는 산행길이 있었고

둘째날은 처음부터 정동진에서 괘방산을 넘는 4시간 동안의 산행을 하였는데

오늘도 출발시점부터 산길이 시작된다

 

 

정감이마을 등산로 유래

마을 김부짓집에 머슴을 살고 있는 유총각이 있었는데

유총각은 부지런하고 영리하고 참으로 성실하여 주인과 이웃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사실 총각은 본래 양반이었는데 집안이 몰락하여 김씨 집에 머슴을 살게 된 사람이었다

마침 김부잣집에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성실하고 잘생긴 유총각을 사모하게 되었고

어느 봄날 김낭자는 뒷산에 나물을 캐러 가고 유총각은 나무를 하러 가게 되어 산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산에서 소나기를 만나게 되었고 소나무 가지 밑에서 비를 피하던 중 둘은 같이 도망가기로 결심하고

칠성산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등산로로 가는 도중 명주관아를 보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 길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후 젊은 연인들이 이 장소에서 사랑을 언약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유래가 내려오고 있다는 이야기~

 

 

산의 해발고도가 낮은 탓에 급격한 오르내림은 없는 숲길 산책로 수준급의 산길이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요  길은 길이다~

 

 

8:27   해발 139m인 시둔지봉

 

 

최남준 님의 표지기.....   여기까지도 휩쓸고 갔으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8:53   두 번째로 나오는 태양광발전단지

 

 

이정목이 삭아서 뿌리째 뽑혀져 있다

그나마 제대로 방향을 맞춰 팔을 벌리고 누워있으니 다행일세~

 

 

9:12   언별리 도로에 내려섰다가 바로 또 산길로 올라야 한다

여기까지 4.5km 거리의 산길을 1시간 8분 동안 걸었다

언별리에는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송담서원(松潭書院)이 있는데 그냥 패스한다

언별리(彦別里)리라는 마을의 이름도 순조 때 송담서원이 산불로 불타 없어지자

서원에서 공부하던 많은 수의 유생들이 이곳을 떠나버렸는데

선비들이 떠났다는 의미로 언별리(彦別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저 멀리 선자령과 풍력발전기가 보이고

 

 

강릉 시가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9:41   동막저수지(東幕貯水池)

 

 

여기까지 6.4km 산길을 1시간 40분 걸었다

 

 

배추밭과 동막저수지 제방

 

 

어단2리 농로

 

 

홍시를 따고 있는 아저씨....  맛보라고 2개를 주는데 맛있다

 

 

 

10:09   어단1리 상부락마을 서낭당

 

 

 

멋진 한옥

 

 

어단천(於丹川)

어단리는 고려 말 강릉주현의 제유인 벼슬아치들이 낙향하여

인근인 금광리에 은거하면서 이곳에 제단을 만들고 임금을 향해 망제를 올렸다하여

어단리(於丹里)로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테라로사 커피공장

 

 

10:53   굴산사지 당간지주 갈림길

당간지주와 석불좌상을 먼저 답사한 뒤 오독떼기전수관으로 간다

 

 

굴산사지 석불좌상(掘山寺址 石佛坐像)

 

 

굴산사지 석불좌상(掘山寺址 石佛坐像)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으로 굴산사가 창건된 이후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굴산사지에는 모두 4구의 석불 좌상이 있었는데

나머지 3구 중  2구는 1968년 후에 세워진 굴산암자에 봉안되어 있으며

1구는 굴산암자 동쪽 500m 떨어진 초암에 봉안되어 있다

 

 

 

얼굴의 마모가 심하며, 특히 하반신이 많이 파손되어 있고

머리 위에 올려진 팔각형의 석물은 원래의 것은 아니고 나중에 올려진 것으로 추정한다

 

 

 

보물 제86호  굴산사지 당간지주(掘山寺址 幢竿支柱)  :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鶴山里)

굴산사지에서 남쪽으로 좀 떨어진 언덕의 경작지 한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편에 속하는) 당간지주로 거대한 석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두 지주는 높이 5.4m이며, 서로 40사이를 두고 마주 서 있다

지주의 위와 아래에는 각각 둥근 구멍을 관통시켜 깃대를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몸체에는 돌을 다듬으면서 생긴 정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어 오히려 생동감과 우뚝 선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지주의 정상 부근에 이르러서는 안팎 양쪽에서 차츰 둥글게 깎아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은 뾰족한 형태를 하고 있다

 

 

 

당간지주는 남쪽으로 매봉산과 갈미봉을 배산(背山)하여 우뚝 서 있다

 

 

조망해 보는 매봉산

 

 

그리고, 그 오른쪽의 갈미봉 모습

 

 

굴산사(掘山寺) / 이름만 같을 뿐, 근세에 지은 절집이다

 

 

11:30   오독떼기전수관 :  강릉시 구정면(邱井面) 학산(鶴山)2624

오독떼기는 농사를 지으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농요로

들노래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강릉 학산오독떼기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토속민요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조(재위 14551468)

오독떼기를 잘 부르는 사람을 뽑아 노래하게 하고 상을 주었다고 한다

 

 

 

오독떼기에 대한 의미로는

다섯 번을 꺾어 부르기 때문에 오독떼기라고 했다는 설과

 는 신성하고 고귀하다는 뜻에서, ‘독떼기는 들판을 개간한다는 뜻에서 생겼다는 설 등이 있다

 

 

오독떼기전수관이 37코스 종점이다

 

 

오독떼기전수관 길 건너가 바로 옛 굴산사지(掘山寺址)인데

거기에는 굴산사지 부도(승탑)과 석천 등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로 2003년 6월 지정된 강릉 굴산사지

굴산사는 신라시대 선승(禪僧)인 범일(梵日)

서기847(문성왕 9) 명주도독 김공(金公)의 청을 받아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1936년 대홍수 때 이곳 농경지가 유실되면서 초석 일부가 노출되어 건물터가 확인되기 시작했고

이때 굴산사지 석불좌상을 비롯한 굴산사지 승탑, 굴산사지 당간지주 등 굴산사지 관련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굴산사지 승탑(掘山寺址 僧塔) : 보물 제85

굴산사의 창건 조사인 범일국사(梵日國師)의 부도(浮屠)로 추정하는 강릉 굴산사지 승탑은

화강암으로 건조한 팔각원당형의 일반적 석조 승탑으로 신라 이래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일부에 새로운 수법이 가미되어 주목되는데

높고 널찍한 지대석 위에 기단부를 형성하고 탑신부를 안치하였으며, 정상에 상륜을 장식하였다

 

 

수령 540년의 굴산사지 소나무

 

 

굴산사지 석천(石泉)

석천 우물은 강릉 단오제의 주신인 국사성황신 범일국사(梵日國師)를 잉태하게 한 우물로 전한다

어느 날 한 처녀가 석천우물에 물을 길러 왔다가 바가지로 물을 떴는데 바가지 안에 해가 떠 있었다

처녀는 해가 들어 있던 물을 마시고 임신을 하게 되었고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가 남자아이를 낳았기에 부모는 그 소문이 날까 두려워 학바위에 아기를 버렸다

그러나 아기는 '학바위'에서 학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으며

그 후 아이는 자라서 학산마을에 굴산사라는 큰 사찰을 창건하여 수호신이 되었다

그가 바로 '범일국사'인 것이다

설화에 등장하는 '학바위'는 굴산사지 승탑 바로 옆 야산 언덕배기에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으나

답사는 생략을 하였고,  학바위가 있어 이곳의 지명도 학산(鶴山)이다

 

 

굴사사지에서  발굴된 유적들을 모아둔 모습

 

 

강릉 학산 서낭당

강릉지역의 서낭당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종 모양으로 쌓은 것이 다른지역의 서낭당과는 차이가 있다

조금전 지나왔던 어단1리 상부락마을 서낭당도 이와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매년 음력 4월 보름에 국사성황 행차가

구산의 서낭당을 거쳐 대관령 국사여성황사로 가기 전에 이곳을 들러 서낭제를 지낸다고 한다

 

 

굴산사지의 전체 모습을 카메라로 한 번에 다 담기는 어렵다

족히 몇 만평은 될듯하다

 

 

굴산교

해파랑길 37구간과 38구간이 나뉘어지는 이정목이 서 있다

강릉바우길도 마찬가지로 6구간과 7구간이 여기에서 갈린다

 

 

이제부터는 해파랑길 38코스 구간이다

 

 

 

조철현(曺喆鉉) 가옥 /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7호

현 소유자의 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처음 지었으나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지고

1953년 조규팔 씨가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옥은 대문간채가 없는 ㄷ자형 구조로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고

곳간 뒷면과 사랑채 뒷마루는 외부로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언덕배기에 예쁘게 자리하고 있는 구정(邱井)초등학교

 

 

12:09   학산1리마을회관을 지나고

 

 

12:19   여기에서 또 산길로 접어든다

 

 

나무가지 너머로 장현저수지가 보이고

 

 

12:40   산길을 벗어나 장현저수지로 내려선다

 

 

장현저수지(長峴貯水池)

 

 

오후1시가 다 되어 간다

아침에 먹은 라면이 벌써 소화가 다 되었고 배가 슬슬 고파온다

징검다리를 건너 양지녘에 앉아 양갱 2개로 시장기를 달랜다

 

 

물이 있는 곳 주변은 어디서든 경치가 좋다

야자매트가 잘 깔려져 있는 호반길을 콧노래 부르며 유유자적 걷는다

 

 

잠시 산길로 접어들었다가

 

 

13:10   장현생태습지로 내려서고

 

 

둘레길을 조금 벗어나

 

 

13:17   송파정(松波亭)

저수지 끝자락에 있는 정자에 잠시 올라 서 보고 돌아간다

 

 

또다시 산길이다

 

 

13:44   마을 앞 도로에 내려섰다가 바로 또 산길로 오른다

이제 모산봉이 지척인듯 한다

 

 

13:59   모산봉(母山峰) 정상

산의 생김새가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라 모산(母山)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월대산, 땅재봉, 시루봉과 함께 강릉을 떠받치고 있는 4주산 중 하나다

 

 

모산봉 복원비

모산봉은 인재를 많이 배출한다 하여 문필봉이라고도 불렸는데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강릉 지역에 큰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산봉의 꼭대기를 세 자 세 치 만큼 깎아내렸다고 한다

2005년 지역단체들이 옛 정기를 되찾고자 모산봉 봉우리 1m 높이기운동을 전개했는데

산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흙자루를 날라 15톤 트럭 10여 대 분량의 흙을 옮겼다

그 덕분에 104m였던 산봉우리가 원래 높이인 105m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모산봉은 105미터 높이의 낮은 봉우리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1 1일 이면 해돋이 행사가 열리는 곳이라 한다

그러나 정상 주변의 소나무들이 시야를 가려서 전망은 그다지 좋지 않다

 

 

14:06   모산봉 주차장 

 

 

경포중학교(鏡浦中學校)

 

 

노암초등학교(魯巖初等學校)

 

 

14:34   강릉교육지원청

 

 

단오산림공원

 

 

단오산림공원과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사이를 지나는데

강릉 단오제(江陵 端午祭)의 시작점은 대관령 산신제이다

음력 4월 5일 강릉대도호부의 칠사당(七事堂)에서 단오제에 쓰일 제례주를 빚는 신주 담기를 시작으로

4월 15일 대관령 산신제(김유신 장군) 및 국사 성황제(범일국사)를 갖고

단풍나무를 신목으로 모시고 강릉으로 내려와 국사 여성황사에 합사한다

음력 5월 3일, 제장을 남대천(南大川) 단오장 가설 제단으로 옮겨 단옷날 전후 8일간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제례, 단오굿, 관노 가면극 등 3개 부분을 중심으로 단오와 비단오 문화가 어우러지는 축제다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

강릉단오제는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 구전 및 무형 문화유산 걸작’으로 등록되는 영광을 차지하였다

이 명칭은 2008년 6월 제2차 무형 문화유산 보호 협약 당사국 총회의 제도 변경에 따라

‘인류 무형 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바뀌었다

 

 

14:47   창포(菖蒲)다리를 건넌다

단오에는 여인들이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창포(菖蒲)를 다리 이름으로 지었다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으면 창포 특유의 향기가 잡귀를 쫓고 머리에 윤기가 난다고 그런 풍습이 있었다

 

 

남대천(南大川

강원도 태백산맥(太白山脈) 동쪽사면 만덕봉(萬德峰 1,035m)과 대화실산(大花實山 1,010m) 사이

삽당령(揷堂嶺)에서 발원(發源)하여 왕산면과 강릉시가지 남쪽을 거쳐 남항진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예전에는 경포호 하구로 흘렀으나 지금은 하평에서 동해 바다로 흐르는데 강을 직선화하여 물의 흐름이 빠르다

남대천(南大川)은 강릉대도호부의 관아 앞(남쪽)으로 흐르는 큰 내여서 생긴 이름이다

 

 

창포다리를 건너 남문동(南門洞) 주택가 골목으로.....

 

 

작은 공연장 '단'

1958년에 건축된 오래된 건물로 지금은 연극이나 콘서트 등이 꾸준히 열리고 있는 공연장이다

 

남문동 주택가 골목을 지나면

오래된 목조 주택과 기와집들이 따스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강릉 '시나미 명주동 골목길'과 이어진다

시나미는 '천천히'라는 뜻으로 강릉 사투리이다

이색 카페, 문화공간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핫플레이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명주동 골목거리는

옛날 동네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카페와 전시장, 공연장 들이 들어 서 있는 곳으로

예전에는 강릉의 번화가 한가운데였었지만 시청이 이전하고 도심이 확대 발전하면서 생기를 잃은 빛바랜 동네가 되었으나 이곳의 낡은 건물을 활용한 문화공간이 들어서면서부터 다시 활기를 찾았다고 한다

이 건물 뿐만아니라 옛 방앗간과 100년 넘은 적산가옥들은 멋스러운 카페 등으로 재탄생하였으며

지금은 강릉 커피축제, 명주 프리마켓 등 각종 콘서트와 공연 등이 열리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로 예정한 강릉 대도호부 관아가 보인다

 

 

15:00   강릉 대도호부 관아

오늘 여기까지 25.6km를 6시간 56분 동안 걸었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江陵 大都護府 官衙)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고려·조선 시대 강릉부(江陵府)의 객사로서

1993 객사 관련 유적이 확인돼 강릉 임영관지(臨瀛館址)로 지정된 후 2012년 복원 완료하였고

20141217일 강릉 대도호부 관아로 지정 명칭을 변경하였다

 

 

동헌(東軒)

 

 

의운루(倚雲樓)

 

 

칠사당(七事堂)

수령의 집무처로, 칠사당이라는 명칭은 수령이 해야 할 주요 업무인 칠사(七事)에서 유래되었다

칠사(七事)란  농사, 호구, 교육, 병무, 세금, 재판, 풍속을 말한다

 

 

칠사당(七事堂)은 강릉단오제가 시작되는 곳으로 

음력 4월 5일 칠사당에서 단오제에 쓰일 제례주를 빚는 신주 담기를 시작으로 단오제가 열린다

 

 

 대도호부 관아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은행 강릉본부

이제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강릉역으로 간다

 

 

지금 시각이 3시 반인데 아직까지 점심을 못 먹었다

강릉역으로 가는 도중에 돼지국밥집 앞을 지나는데 국밥 내음새가 코를 홀린다

강릉에도 돼지국밥집이 있다니 어떤 맛일까 궁금하기도해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한 그릇에 12천원이나 하는데 이 집의 자랑대로 국물맛은 진하고 좋은데

 고기의 질이 부산보다는 많이 못하다...   부산보다 값도 비싼데...

주린 배를 채우느라 허겁지겁 먹기는 잘 먹었다~

 

 

강릉역

강릉시외버스터미널은 예전에 몇 번 이용한 적이 있지만 강릉역은 오늘이 처음이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기차를 기다린다

동해선 ITX 마음은 완행열차라 강릉에서 부산까지 5시간 23분이나 걸리는데

가격은 고속버스보다 싸지만 시간은 23분이 더 걸린다

내년에 급행열차인 ITX 이음이 개통되고 운행차편이 더 늘어야 좀 더 편리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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