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5월 <월간 산>에 소개된 나주(羅州)의 진산(鎭山)인 금성산(錦城山)을 오른다
산 이름 금성(錦城)은 나주의 옛 이름으로
나주의 수문장처럼 평야지대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금성산은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있고
물길과 맞닿아 있어 관측과 방어에 유리한 군사적 요충지답게 지금도 정상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산행 시에는 주변으로 우회를 해야 하는데
그래서, 금성산을 오롯이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지금 도립공원화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산행에 앞서 나주 시내에 있는 금성관(錦城館)을 먼저 찾는다
나주 객사인 금성관(錦城館)은 옛 나주(羅州)의 위상에 걸맞게 조선시대 객사 중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보물 제2037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성관 외삼문(外三門)인 망화루(望華樓)
고려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나주는 역사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는데
983년(성종 2년)에 목(牧)이라는 행정 구역을 편제하고, 전국에 12목을 두는데
12목(양주, 광주, 충주, 청주, 공주, 해주, 진주, 상주, 전주, 나주, 승주, 황주) 중 하나가 된 나주는
조선시대에는 전국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낼 정도로 오랫동안 번영을 누린다
조선 후기인 1897년에 목이 폐지될 때까지 천년고도 목사골에는 300여 명의 목사(牧使)가 있었고
명실상부한 호남의 경제, 문화, 군사, 행정 중심지였다
또한, 금성관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 선생이 의병을 모아 출병식을 가졌던 곳이기도 하다
금성관 중삼문(中三門)
금성토평비(錦城討平碑)는 고종 31년(1894) 동학농민운동이 터졌을 때
관군이 동학군과 싸워 나주성을 지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5년에 세운 비다
사마교비(駟馬橋碑)는 고려 현종2년(1011년)에 거란의 침입을 받아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을 가다가
2대 왕 혜종의 고향인 나주에서 10여일을 머물렀는데
이때,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리를 건너갔는데 이후로 이 다리를 사마교라 하였고
이후 조선조 효종2년(1651년)에 당시 나주 현감이 사마교를 보수한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석이다
<참고사진 펌 : 사마교비>
금성관(錦城館)
중앙의 팔작지붕 건물이 객사의 정청(正廳)인 금성관이며 좌우 건물은 날개의 뜻을 가진 익헌(翼軒)이라 하는데
각각 동익헌, 서익헌으로 나누어 부른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 건물로 사용해오면서 원형이 파괴되어 1976년에서 1977년 사이 완전해체 복원하였다
금성관의 현판은 광산 김씨 문정공 태현(台鉉)의 후손 낭공옹(浪翁公) 현(晛: 26世)이 1612년 나이 7세에 쓴 글씨다
금성관 바깥에 있는 정수루(正綏樓) / 옛 나주목의 관아 문이었다
정수루의 큰 북은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이 나주 목사로 부임하면서
백성들이 이 북을 치면서 원통한 일을 하소연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안동에 가면 안동터미널에서 봉정사로 가는 길목인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학봉 종택이 있는데
퇴계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은
그들의 사후에 후손들에 의하여 400년간의 병호시비(屛虎是非)에 휘말리게 되는데
2013년 경상북도가 안동시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부지에 '호계서원'을 복설하면서 이 묵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경상북도에서는 세 분의 위패를 원래 있었던 호계서원으로 다시 모시되
서애를 퇴계 위패의 동쪽에, 학봉은 서쪽에 두되 그 옆에 학봉의 후학인 이상정을 배향하기로 중재했다
서애는 높은 자리를, 학봉은 두 명의 자리를 보장하는 화해안을 제시하였고
두 학파가 이에 동의하면서 400년간 이어진 영남유림의 병호시비는 화해의 물꼬를 텃고
이날 호계서원에서 '복설(復設) 고유제'를 지냄으로서 비로소 종지부를 찍었다
또, 김성일은 황윤길과 함께 왜국에 통신사 부사로 갔다 온 뒤에 왜국의 조선 침략 징후를 보고할 때
왜국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옛날에 배웠던 역사에서는 당파 싸움에 휘말려 서인(西人)인 정사(正使) 황윤길과는 달리
동인(東人)인 부사(副使) 김성일은
풍신수길의 관상이나 여러가지를 볼 때 감히 조선을 침략할 위인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학봉의 보고는
정사의 말처럼 당장 왜적이 사신들의 뒤를 따라 금방 쳐들어 올 것이 아니고
왜적이 오기도 전에 조야가 겁에 질려 혼란이 생길 것을 염려하여 정사의 보고에 반한 보고를 한 것이라는데
후손들에 의한 나름의 변명이지 아닌가 싶다
금성관 역사탐방을 마치고 이제 본연의 목적인 금성산 산행에 나선다
11:45 한수제(漢水堤) 공원 위 출발
오늘 나주의 날씨가 오전까지는 비가 오다가 10시 이후부터는 비가 개인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왔는데
요즘의 일기예보는 정확하게 잘 맞춘다
바로 위는 체육공원이다
12:01 희망의 문을 지나고
케른과 삼각점이 있는 작은 봉우리(작은 금성산 244.9m)를 지나면
12:10 이내 장원봉(壯元峰)에 다다른다 / 산행시간 : 25분
장원봉에는 팔각정 정자인 금영정(錦榮亭)이 있는데 금성(錦城)과 영산강(榮山江)의 첫 글자를 따서 지었다
장원봉(壯元峰) 정상목은 금영정 정자 옆에 있다
장원봉(壯元峰)이라는 이름은 나주 향교의 교생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올려다 보는 봉우리라서 이름 붙여진 듯.....
금성산 정상 / 정상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우회를 해야 한다
두꺼비봉
월정봉(月亭峰)
월정봉 뒤로는 영암의 월출산(月出山)이 보이는데 시계가 좋지않아 희미하기만 하다
망원으로 당겨 본 월출산
나주시 전경
나주는 ‘소경(小京)’, 즉 ‘작은 한양’이라 불릴 정도로 인구가 많고 물산이 풍부하였고
북쪽으로는 금성산(錦城山)이, 남쪽으로 영산강이 있어 큰 도시가 발달하기에 좋은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다
나주는 '남도의 곳간'으로
350리 굽이굽이 흐르는 영산강은 황금 곡창지대 나주평야를 적시며 전라도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이런 까닭에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마한과 백제의 역사가 번성했고, 문화의 꽃을 피웠다
팔각정(금영정)에서는 영산강의 S라인 물줄기와 나주평야, 무등산이 한눈에 보인다
산 아래쪽에 동신대학교와 김천일 의병장을 모신 사당인 정열사(旌烈祠)
동쪽으로는 나주읍성의 4대문인 동점문, 영금문(서성문), 남고문, 북망문도 볼 수 있다
영금문은 1894년 전봉준과 당시 나주목사 민종렬이 담판하던 역사적인 장소인데
동학농민군은 전라도 53개 고을을 모두 함락시켰지만 유일하게 나주성은 접수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등산을 조망하려고 망원렌즈를 최대치로 당겨보지만 무등산은 실루엣 조차도 잡히지 않는다
줌인한 동신대학교 체육관
팔각정에서 삶은 고구마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12:25 금영정을 출발한다
12:43 행복의 문(약수터 갈림길)
이 도로는 임도가 아니고 정상의 군부대로 가는 작전도로다
12:47 낙타봉 / 산행시간 : 1시간 2분
낙타봉에서 임도를 따라 금성산 정상 뒤로 빙 돌아갈 수도 있지만 별 의미가 없다
어치피 금성산 정상은 오를수가 없기에 낙타봉 아래 작전도로에서 약수터로 바로 직행을 해서
금성산 정상 아래를 돌아가는 코스를 택한다
12:53 약수터
약수터 아래에는 시원한 암반계류가 있어 탁족을 즐길 수 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를 못하니 아쉽다
약수터 조금 아래의 이 갈림길에서 이정표의 오두재 방향 오르막길로 간다
철조망이 담장처럼 둘러쳐져 있고 곳곳에 ‘과거 지뢰 지대’ 표지가 경고를 하고 있다
등산로는 금성산 정상 아래를 빙 돌아가는 사면길로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되는 편안한 길이다
오전에 비가 그치면서 잔뜩 머금은 습기때문에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간다
약수터에서 약50여 분, 드디어 저기 고개가 보이고
13:42 오두재(五頭峙)로 내려 선다
14:05 두꺼비봉(뚜껑봉) / 산행시간 : 2시간 20분
14:24 떡재
떡재에서 몇몇은 탈출을 하고 마지막 월정봉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너무 땀을 많이 쏟아내는 바람에 두꺼비봉까지는 괜찮았던 체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고갈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도중에 두 번이나 소금을 털어 넣었지만 섭취한 염분보다 배출이 더 많았는지 별 효과는 없는 것 같다
발목토시를 했는데도 신발안의 양말까지 축축하여 걸을때마다 질퍽질퍽 소리가 난다
15:09 월정봉(月亭峰) / 산행시간 : 3시간 24분
월정봉에서 서쪽의 저수지인 벽룡제 너머로는 정도전이 유배되었던 백룡산(347.2m)이 보인다고 했지만
나무숲으로 우거져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는다
월정봉에서의 하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이윽고 한수제 저수지가 보이고
한수제(漢水堤)로 내려선다
15:27 금성산 맨발길
먼지털이기와 손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도시설도 설치되어 있어 시원한 물로 세수와 머리를 씻는다
한수제(漢水堤)
15:39 한수제 공원 주차장 도착 / 총산행시간 : 3시간 54분
'등반사진 > 전라도의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흥 우미산(447m) : 2022. 9. 22. 한마음산악회 (0) | 2022.09.23 |
---|---|
화순 중봉산-종괘산 환종주 산행 : 2022. 8. 17 한마음산악회 (0) | 2022.08.18 |
광양 가야산(496m)-구봉산(473m) : 2022. 7. 27 한마음산악회 (0) | 2022.07.28 |
강진 비파산(403m)-오봉산(394m) : 2022. 7. 21 한마음산악회 (0) | 2022.07.22 |
광양 삼봉산-천왕산-망덕산 : 2022. 5. 4. 한마음산악회 (0) | 2022.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