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동국제강 자리였던 용호동 LG메트로시티 아파트단지에서 바다 쪽 용호만매립부두 인근에
'소금공원'이라는 엉뚱한(?) 이름의 작은 공원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소금공원이 이곳에 조성된 역사적 배경을 찾아 용호동을 찾는다
용호동(龍湖洞)이라는 지명은
마을 한 가운데에 작은 호수가 있었고, 그 곳에 살던 용이 하늘에 오르지 못해서 용호동(龍湖洞)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용호동이라는 지명이 처음 확인되는 것은 1904년이고, 한동안은 용호동보다는 분개(盆浦)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원래 이곳은 조선후기에 부산에서 소금을 제일 많이 생산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원래 분개(盆浦)라고 불렀는데
분개는 소금을 굽는 동이를 뜻하는 '분(盆) '에 '갯가(浦)'가 붙은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 때에 영도 남항동에서 제염사업을 하던 시라이시 우마타로(白石馬太郞)가 본격적으로 이곳을 장악하면서
시험제염 용호출장소(試驗製鹽 龍湖出張所)가 설치된다
이때 인근 용당동(龍塘洞)의 이름을 참고하여, 염전호수가 있는 곳이라 해서 용호동(龍湖洞)이라는 지명이 탄생한다
주변에 분포초등학교와 분포중학교, 분포고등학교가 있고
도로 이름인 분포로, 다리 이름에는 분포교 등이 있어 옛 이름의 흔적들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용호종합사회복지관

용호종합사회복지관 옆 담벼락에 소금공원이 있게 된 옛 분개염전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분개염전(盆浦鹽田)은
부산 남구 용호1동과 3동에 있던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금을 생산하던 염전으로
분개염전은 조선 시대 동래 남촌면에 속한 염전으로 동래 지역에서는 소금 생산량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약 400년 전 현 남구 대연동 석포(石浦)마을 동쪽의 염전을 개발한 것이 첫출발이었다고 하며
이곳을 ‘사분개(四盆浦)’라고 하는데, 부경대학교 앞 바다로 넓은 갯벌이 있어 염전을 조성하기 쉬운 곳이었다
이후 조수의 움직임에 의하여 자연적인 매립이 이루어져 점차 용호동 쪽으로 염전이 옮겨 갔다
당시 용호동은 민가 없이 소금을 굽는 동이(盆)만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분’이 있는 포구라는 뜻으로 ‘분포’ 또는 ‘분개’라는 지명이 생겨났고
이곳의 염전을 분개염전(盆浦鹽田)으로 부르게 되었다

용호동 하수종말처리장

용호선착장

30~40년쯤 전에는 아침 일찍 남천동 쪽 방파제로 가면
조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섭자리 어민들이 잡아온 싱싱한 활어를
배에서 바로 흥정하여 구매할 수 있는 새벽 파시가 이뤄지기도 했었다

용호선착장 너머로 보이는 저 아파트단지가 옛 분개염전(盆浦鹽田)이 있던 자리였다

용호어촌계 어민 활어판매장
어민들이 직접 잡아온 싱싱한 자연산 활어회로 이름이 난 곳으로 아직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나도 한때는 이곳을 자주 들락거렸었는데.....

오늘은 월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한 모습이다


동산교 위에서 뒤돌아 본 용호선착장

동산교에서 외항 쪽 전경
동산교 좌우의 이 바닷가를 '섭자리'라고 불렀다
섭자리(섶자리) 마을은 용호동의 자연마을로
현재의 용호 선착장 주변에 해조류가 많았다는 데서 섭자리라는 이름이 유래한 듯하다
'섭'은 작은 나무나 잎을 뜻하기도 하고, 바다의 잎 즉 해조류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곳 섭자리 마을이 해안가 절벽이 있는 곳에 위치하므로 이 부근에 잘피(왕거머리말)가 많아 그렇게 불린 듯 싶다
한편으로는 강원도 등 동해안의 방언으로 섶은 홍합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 지역의 특성상 홍합이 많이 나는 점에서 섶자리란 홍합이 많이 나는 곳으로도 볼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1998년판 동아 메이트 국어사전>에는 '섶' 과 '섭'을 혼용하여 쓰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섶(섭) 1 : 덩굴지거나 줄기가 가냘픈 식물을 받쳐 주기 위하여 곁들여 꽂아 두는 막대기 (나팔꽃에 섶을 대다)
섶(섭) 2 : 두루마기나 저고리 따위의 깃 아래에 달린 긴 조각 (섶이 날렵하다)
섶(섭) 3 : <섶나무의 준말> 섶 지고 불로 든다(속담) : 짐짓 그릇된 짓을 하여 화를 자초하려 한다는 말
섶(섭) 4 : 누에가 올라가 고치를 짓도록 마련한 짚이나 잎나무. 잠족 (누에를 섶에 올리다)
섶(섭) 5 : 물고기가 그 곳에 모이도록 물 속에 쌓아 놓은 나무
섶나무(섬나무) : 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섶다리)

동산교(東山橋)
다리 이름은 나중에 나오는 동생말(동산말)에서 나온 이름이다
동산(東山)은 용호동의 옛 지명인 ‘분개’ 사람들이 장자산을 부르던 말로서 동쪽 산의 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기대 장자산 쪽 모습

소금공원

도로 건너편의 분포도서관





소금공원의 소금을 상징하는 조형물
이 주변에서 매년 가을이면 '소금빛 밤바다 축제'가 열린다는데
작년에는 10월 18일에 개최되었다


소금공원에서 돌아와 동생말로 항햔다

이 동산호횟집도 예전에는 어민활어판매장에 여러 횟집들과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따로 떨어져 나와 옛 명성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다
나의 옛 단골 횟집이었다~

용호별빛공원


동생말(동산말)
동산은 용호동의 옛 지명인 ‘분개’ 사람들이 장자산(長子山)을 부르던 말로서
'동쪽 산의 끝(東山末)'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동생말에서 한고비를 넘으면 못난이골짜기라는 기암절벽이 작은 암자(백련사)를 받치고 있다

동생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옛 동국제강 자리의 아파트 단지 모습
저 곳이 오래전 분개염전(盆浦鹽田)이 있던 곳이다
1964년에 동국제강이 갯벌을 매립하여 들어섰다가 1998년 공장 부지를 LG 메트로시티 부지로 매각하여
2001년에 지금과 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다


이제, 백련사 아래 기암절벽에 있다는 각시당(못난이 각시당)을 찾아 나선다
동생말에서 해안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옛 이야기가 전해오는 못난이 골짜기가 나오고
못난이골 해안에서 골짜기를 따라 벼랑을 오르면 전망대봉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산 중턱 큰바위 암굴속에
무속인들이 촛불을 밝혀 놓는 못난이 각시당이 있고
못난이 각시당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범어사의 말사인 백련사가 있다고 했다
자료를 검색해도 각시당으로 올라가는 상세한 기술이 없어
해안 쪽으로 조금 가다가 구름다리가 나오기 전 시멘트 석벽 사이로 희미한 길이 있어 일단 이 길로 올라가 본다

갈림길 위치 포인트

내려다 보이는 구름다리
저 구름다리 주변의 해안 골짜기가 못난이 골짜기인가?

좁고 가파르고 희미한 비탈길을 따라 오르니 뜻밖에도 여기로 나온다
이곳은 동생말 윗쪽 해안절벽 위의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배 모양의 '이기대 휴게소'인 더 뷰(the VIEW)다
웨딩홀과 뷔페식당을 운영하던 the VIEW는 '이기대 휴게소'라는 명분으로 들어섰지만
공사 당시부터 부산지역 토박이 중진 정치인인 모 국회의원과 관련된 소문들이 무성하더니
개업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아서 문을 닫았고 지금까지 그대로다

주변을 둘러보니 주차장 한쪽에 산으로 연결되는 흔적이 보여 그 길을 따라 또 오른다


누군가가 매어놓은 얇은 밧줄
가파르고 무너져 내리는 위험한 급경사 오르막길을 조심스럽게 치고 올라
마주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은 백련사로 가는 길이라
왼쪽의 희미한 길 흔적을 따라 가파른 절벽 위의 산허리길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나가니

각시당이 있다는 큰바위 암굴은 보이지를 않고, 용도를 모를 저 건물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훑어 보아도 각시당은 아닌것 같고 더 이상 전진은 위험해 발길을 돌렸다

각시당을 찾았다
갈림길로 돌아와 백련사로 올라가는 도중 오른쪽 비탈위에 보이는 저 바위 암벽의 구멍이 각시당이다
예전에 백련사에서 이 앞으로 하산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각시당의 존재 자체를 모를 때였다
그러고보니 이 각시당 오는 길은 오늘처럼 위험한 곳을 들머리로 할 것이 아니라
동생말로 가는 도로에서 백련사로 바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따르면 쉽게 접근할 수가 있다
암벽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변을 빙 둘러 나무울타리로 막아 두었지만
옛적부터 섭자리의 뱃사람들이 조업나갈 때면 이곳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였다고 하며
바위면 여기저기에 흰색 페인트로 적어둔 사람들의 이름도 보인다

못난이 각시당
옛날 낙동강변 작은 마을 어부의 외동딸 처녀가
중매쟁이 꼬임에 속아 분포리(용호동) 박씨 총각과 혼인을 하였으나
신혼 단꿈을 꾸고 난 아침에 신랑을 보고서는 너무 못생겨 기절할 뻔하였다
시집가면 살아서는 친정에 오지 말라던 아버지의 말씀따라 남편으로 모시고 잘 살겠다는 다짐을 하였지만
결혼한지 1년되는 봄에 나물을 캐다가 절벽 아래로 실족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후, 못난이 남편의 별명을 따서
이루지 못한 새각시의 애절함이 묻어나는 이 절벽을 못난이 골짜기라 하였고
지금도 못난이 골짜기의 구름다리는 바람이 불면 중매쟁이를 원망하며 흐느껴 운다고 한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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