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등반사진/부산,경남의 산

화지산-금용산-쇠미산 : 2025. 01. 07.

딜라일라 2025. 1. 7. 20:10

 

아주 오랜만에 화지산과 금용산을 오른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화지공원을 찾아 동래 정씨 유적인 추원사와 화지사를 답사한다

 

 

 

하마정 교차로 도로변의 하마비(下馬碑)

 

 

고려 시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래 정씨 시조 묘 앞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 머물라는 의미를 담은 지명으로

말이 주요한 교통수단이 되던 전근대 시기에

말을 타고 지나갈 때 말에서 내리라는 의미의 하마비(下馬碑)를 세우고

말에서 내려 머무는 곳을 하마정(下馬停)이라고 하였다

하마비는 왕이나 성현 또는 명사, 고관의 출생지나 분묘 앞에 세워져

선열에 대한 숭앙의 표시로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하도록 하는 표식이었다

 

동래 정씨는 고려의 문벌 귀족으로, 이후 명문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동래 정씨의 시조인 정문도(鄭文道)의 묘소가 있는 화지산 자락 아래의 정묘사(鄭墓寺)를 지날 때

경의를 표하고 가라는 의미에서 하마비를 세우게 되었고

여기서 하마정(下馬停)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화지공원

 

 

동래정씨회관(東萊鄭氏會館)

 

 

화지공원 정문인 현경문(顯景門)

 

 

추원사(追遠祠)

화지 공원 내에 있는 동래 정씨 문중의 시조 사당으로

본래는 추원당이 있었으나, 2003년 옛 건물을 헐고 그해 813일 착공하여

20041211일 추원사(追遠祠)를 준공하였다

동래 정씨 가문에서는 매년 4회의 향사(享祀)를 지내는데 추원사에서는 동지에 향사를 지낸다

 

 

추원사의 내역을 적은  추원사기(追遠祠記) 비석

 

 

추원사의 정문인 경모문(敬募門)

 

 

동쪽 문인 감로문(感露門)

 

 

천연기념물 제168호인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와 정묘(鄭墓)

정묘(鄭墓)는 고려 중엽에 동래 동평현(東平縣)의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동래 정씨 2대 시조 정문도(鄭文道)의 묘이고

 

 

배롱나무(나무 백일홍)는 정묘(鄭墓) 앞 좌우에 각각 1그루씩 심었는데

원줄기는 죽고 주변 가지들이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하며

이 배롱나무의 추정나이를 800여 년으로 보고 있다

 

 

정묘(鄭墓) 아래의 연못

 

 

추원사의 동쪽 문인 감로문(感露門)을 지나 조금 오르면 

화산재(華山齋)와 화지사(華池寺) 앞의 화지(華池) 연못이 나온다

 

화지(華池) 

 

 

연못 가운데는 조그만 섬이 있고 건너가는 돌다리도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겨울이라 그런지 물이 다 빠지고 없지만 물이 가득차 있을 때는 산수경(山水景)의 아름다운 풍치를 보이겠다

 

 

화지 바로 뒤에는 재실(齋室)인 화산재(華山齋)의 대문인 둔산루(屯山樓)가 있다

 

 

둔산루의 문이 잠겨있어  돌아서 화지사로 가본다

 

 

화지사(華池寺)

화지사(華池寺)는 고려 시대의 유서 깊은 사찰로서

부산 동래 지역의 토착 세력인 동래 정씨(東萊鄭氏) 시조를 봉안한 사당으로

동래 정씨 2대 시조 정문도(鄭文道)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고려 중기에 창건되었다

본래의 이름은 영호암(永護庵)이었으며, 이후 만세암(萬世庵), 정묘사(鄭墓寺)로 불리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화지사라고 바뀌었다

그렇지만 부산사람들에게는 화지사 보다는 아직도 정묘사(鄭墓寺)라는 이름으로 친숙하게 불리고 있다

1969년도에 친구를 따라 정묘사 인근에  살던 친구 형의 집으로 갔을때가 있었는데

그때에는 정묘사에는 담장도 없었고 산기슭에 뛰엄뛰엄 민가가 있었던게 기억이 난다

 

 

범종각

 

 

화지사 대웅전

현재 화지사는 동래 정씨 문중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상주하는 승려는 1명이고

동래 정씨의 명복과 후손들의 복록을 기원하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을 위한 사찰의 본래 기능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산신각

 

 

요사채를 지나 끝쪽으로 가니 화산재로 들어가는 사잇길이 있다

 

 

화산재 경내 전경

 

 

화수정(花樹亭)

 

 

재실(齋室)인 화산재(華山齋)

 

 

화산재 담 너머로 보이는 화지(華池) 연못

 

 

화지사를 나와 추원사(追遠祠) 뒷 언덕으로 가면

 

 

추원사(追遠祠)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곳에는 동래정씨 득관대조(得貫大祖)와 기세조(紀世祖)의 비가 모셔져 있다

 

 

12:12   산행시작

동래정씨 유적 답사를 모두 마치고 이제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세차장과

 

 

부산광역시교육청 사이 길 모퉁이에.....

 

 

산으로 올라서는 들머리가 있다

 

 

처음부터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조그만 쉼터가 있는 봉우리에서부터는 경사가 누그려지고

 

 

산길도 넓고 반반하고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도심 한복판의 산 답게 곳곳에 작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어느 구간은 옛적의 공동묘지였는지 무연고 묘지들에 인식번호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이윽고 넓직한 헬기장이 나오더니

 

 

12:42   그곳이 바로 화지산(華池山) 정상이다 / 산행시간 : 30분

부산진구 양정동·초읍동과 연제구 거제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아주 오래전에 지금의 연지동 자리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못이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화지산(和池山)을 화지산(華池山)으로도 쓰고 있다

 

 

MBC송신소 송신탑

 

 

 

앙상한 나무가지 사이로 사직운동장이 보이고

 

 

여기 이 갈림길에서는 부산의료원 방향으로 간다

 

 

저 앞에 보이는 쇠미산

 

 

시내버스 연제공영차고지

 

 

13:09   쇠미산이 마주 보이는 월드컵대로변에 내려 선다

월드컵 대로는 동래구 사직동과  부산진구 초읍동을 연결하는 도로로 옛날에는 '숯골고개'라 불리었다

옛날의 숯골고개는 산골같았는데 숯불구이 음식을 파는 촌집들이 몇몇 있었고

동료들과 고기 먹고 밤늦도록 고스톱으로 동료애를 나누었던 추억이 있다

 

 

사직동 쪽 모습

 

 

초읍동 방향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가야한다

 

 

화지산 날머리 쪽 모습

 

 

쇠미산 아래를 통과하는 함박봉로의 만덕초읍(아시아드)터널

 

 

이 터널은 오늘 처음으로 본다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100여m 쯤 가다가 오른쪽 계단으로 오른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부산광역시립 시민도서관을 지나 어린이대공원 앞으로 빠진다

 

 

13:15   금용산 들머리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저기 황령산이 조망이 되고

 

 

13:21   금용산(金湧山) 149.7m 정상에 닿는다 / 산행시간 : 1시간 9분

정상에는 정상석은 물론 그 흔한 코팅지조차도 걸려있지 않고

 

 

 

나뭇가지에 걸린 산악회 리본 몇 개가 바람에 날리고 있을 뿐이다

금용산(金湧山)이 '쇠 金'에  '샘솟을 湧'으로 쇳물이 많이 난다는 데서 유래한 쇠미산의 한자식 지명으로

나중에 갈 쇠미산의 이름이 쇠미산에서 금정봉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말이 많던데

그 쇠미산이 쇠미산이 맞다면 이 산은 그냥 무명봉인 것이고

그 산이 금정봉이라면 이 산은 금용산이 되는 것인가? 

Daum과 Naver지도에는 쇠미산을 금정봉으로, 이곳을 금용산으로 표시하고 있다

 

 

2009년 3월에는 쇠미산이었는데, 2009년 12월에는 금정봉으로 바뀌어 있다가

2013년 2월에 가서보니 다시 쇠미산으로 환원되어 있는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쇠미산이다~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

 

 

13:30   금용암 갈림길

250m 거리의 금용암을 답사해 보기로 한다

 

 

금용암(金蓉庵)

금용암이라는 이름은 쇠미산의 별칭인 금용산(金湧山)에서 유래하였다고 하고

사찰 명에 걸맞게 샘솟을 용()’연꽃 용()’으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금용암은 금당인 염화전삼성각, 요사인 원통료·향적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후기 철종 때 이인덕행(李仁德行)이라는 보살이 쇠미산 기슭에 초막을 짓고 많은 사람에게 공덕을 베풀었다

보살은 19191015일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비구니계를 받고 대봉(大鳳)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이후 이곳에 기와집으로 인법당 3칸을 짓고 금용암(金蓉庵)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용암은 1964 범어사의 승려 덕윤(德潤)이 중창하였는데

덕윤이 1966년 주지로 추대된 후에는 사찰을 정비하여 1967년 염화전과 향적당을 완성하였다

1992년에는 옛 염화전을 헐고 새로 지었으며, 삼성각·원통료·향적료를 완성하였다

 

 

마주보이는 화지산 자락에는 부산의료원과 교회, 개인택시조합건물이 보인다

옛날에는 저 교회자리쯤에 '금농(金農)'이라는 간판의 큰 중국식당이 있었는데.....

 

 

다시 돌아온 갈림길

 

 

왼쪽으로 간다...  오른쪽 큰길로 가도 쇠미산 정상으로 연결이 되는지... 될 것 같다...

 

 

13:58   어린이대공원에서 쇠미산을 오르는 주 등로와 만나고

 

 

이곳에서 넓은 길을 버리고 쇠미산 정상을 향하여 오른쪽으로...

 

 

복원되지 않은 산성의 흔적

 

 

가파른 오르막 .....

 

 

 

14:20   쇠미산 정상 / 산행시간 : 2시간 8분

이제는 금정봉이 아니라 쇠미산으로 고착화된 것 같다~

옛날 이산에 쇳물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쇠미산'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는데

'쇠솥이뫼'가 '쇠뫼'로 '쇠모'가 다시 '쇠미'로 와전된 것이라 하고

금정산맥 마지막 줄기의 꼬리 부분이라 쇠 금(金)에 꼬리 미(尾) 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들을 피해 여인들이 피난했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생명산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면 덕석바위가 있다

 

 

덕석바위는 넓이가 약80여평이나 되는 넓직한 바위이고  밑에는 베틀굴이 있다

 

 

베틀굴의 환기통이자 비상탈출로인 바위 구멍

 

 

베틀굴

길이가  약 25m나 되는 자연동굴로, 임진왜란 당시 여인들이 피난와 있으면서

군포를 짜 전장에 나가 있는 낭군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산 위에는 겨울 찬바람이 쌩쌩 불어 춥더니 굴 안은 따뜻해서 좋다

 

 

환기통이자 비상탈출구

 

 

전쟁통에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애끓는 염원이 서린 곳

 

 

오늘은 여기쯤하고 사직동으로 하산을 한다

 

 

금정산 습지

 

 

습지 옆 데크를 따라가면 나오는 체육시설 공터에서 하산을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잠시 돌길이 나오더니

 

 

그다음부터는 끝없는 내리막 비탈길이 계단길의 연속이다

 

 

옛날에 한 두 번 내려갔었던,  편안한 길에 무슨 사찰이 있었던 그 길이 아니다

이리로 내려가면 도대체 어디로 빠지게 되는지.....

 

 

눈 앞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

 

 

사직배수지다...   그러면그렇지  처음 내려와 보는 곳이다

 

 

사직배수지를 지나 골목길을 계속 내려서면 왼쪽에 학교 건물이 보이고

오른쪽은 동인고등학교 담벼락이다

 

 

사직중학교 앞을 지나고 또 계속 내리막 길을 가면 사직동 국민시장이었다

옛날에는 삼정그린코아아파트 단지를 지나 사직야구장 쪽으로 하산을 했더랬는데 ^^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