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유유자적(悠悠自適)

여행사진/대마도

대마도 여행 : 2005. 8. 27 ~ 8. 28

딜라일라 2017. 12. 7. 22:49


금석(金石)산성터 입구의 성문
(대마도주가 거주하던 곳으로 서기660년 백제패망 이후 백제잔병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축조한 성으로서 입석식 축조술, 담위의 기와,
기둥의 주춧돌 등은 백제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것이라 한다)


물이 인간에게 주는 여섯가지 교훈

조선통신사를 "막부"가 접객한 장소를 기념하는 비석

애환이 서려있는 덕혜옹주(늦게 본 고종의 서녀)의 비석
(이혼 후 산속에 버려진 이 비석을 찾는데 몇십년이 걸렸다한다)

일본의 강압에 의해 대마도주 가문과 정략적인 결혼을 한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한 삶의 괘적을 읆은 비문

현해탄에 투신한 윤심덕의 이야기로까지 설명이 이어지자
숙연해지는 일행들의 진지한 경청모습)

대마 역사민속자료관 옆에 있는 고려문
(조선통신사를 맞이했던 이즈하라의 성문)

고려문 안내 현판

조선통신사 기념비

조선통신사는 선조40년(1607년)부터 순조11년(1811년)까지
약200년동안 12회에 걸쳐 대마도와 일본 본토를 방문하여
조선의 뛰어난 문물을 전파했다


러일전쟁당시의 전리품인  러시아 황제가 탔다던 옛 자동차

대마역사민속자료관 현판

대마역사민속자료관 앞에서 기념촬영

조선통신사 행렬도 두루마리 그림의 일부
(사진촬영 금지로 중요한 소장자료를 찍지는 못했으나
16.58m길이의 조선통신사 행렬도와 12세기 조선의 고려청자,
고려판 대반야경, 조선에서 간행한 책자인 訓蒙字會, 捷解新語와 부산가마에서 구운 막사발 도자기,

한반도의 영향을 깊이 받은 토기등 국보급 문화재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


수선사(슈젠지)는 이즈하라의 혼마찌 바로 인근에 있다

수선사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는 절로서 최익현선생의 순국비로 유명하다

절을 오르는 계단

구한말 대유학자이며 항일운동가인 최익현선생 순국비

쓰시마에 유배된 뒤 일본에서 경작된 식량 먹기를 거부하고
신발안에 조선의 흙을 넣어와 일본땅을 밟지도 않고 투쟁하였다
죽은 유해는 수선사에 나흘동안 보관하다가 부산으로 이송하였다


절 안에 있는 수많은 무덤들 (일본은 거의 화장을 한다)

돌불상에 걸쳐진 빨간것은 여자의 앞치마를 의미한다고 했다
(多産과 노동력을 상징한다고 했다)

일본의 절은 평시에는 불상이 있는 문을 닫아놓고 있다가
일정한 날에 문을 열기때문에 불상을 보지못했다

이 현판의 낙관을 보면 金씨 성을 가진 조선사람이다


이즈하라에 있는 대표적인 8번궁神社 입구

여기에서 카메라 배터리가 소진되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
(팔번궁의 뜻을 들었는데 잊었지만, 일본사람들은 8자를 좋아하는 모양으로
은행이름도 十八幡은행이 있었다)





우리가 하루밤 묶었던 대아호텔
(작년에 지은 깨끗하고 전망좋은 호텔이다)

대아그룹은  이 호텔과 울릉도 리조트호텔, 경주CC., 그리고 일본과 중국을 운항하는

다수의 여객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기업이다













이즈하라 우체국

이 우체국은 영도우체국과 자매결연되어 있다

산구릉에 있는 일본의 전통 가옥들
(기와지붕으로 된 집들이 깨끗하고 아담하였다)

60년대 한국에서도 볼수 있었던 형태의 기와집

선물의 집(기념품 집) 가게모습도 전통한옥 형태였다

우리 일행이 전날 밤  술잔치를 벌였던 술집

술집의 야경 (전날 밤에 찍은 사진)

점심식사를 했던 식당인 금석관(호텔 內 식당)

이즈하라 혼마찌의 잘 정비된 하천 (물고기가 많이 놀고 있었다)

하천 벽면에 부조로 설치된 조선통신사 행렬도

계속되어지는 조선통신사 행렬도

하천 난간 사이사이에도 통신사행렬도의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즈하라 연안부두

대마도는 인구 4만6천명으로 수도는 이즈하라(인구1만7천명)이며
크기는 제주도 보다 작고 거제도 보다 큰 섬으로,
한국과의 거리(49.5km)가 일본 본토인 큐슈(九州)와의 거리(132km)보다 더 가깝고,

본섬 외 109개의 부속섬이 있는데 사람이 사는곳은 5곳이며
섬 전체의 80%가 울창한 원시림으로 형성되어 있는 섬이다

관광안내도
(우리의 이번 여행은 등산을 목적으로 했기때문에 北대마도에서 부터
南대마도까지 전체 유적답사나 관광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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