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흐르고 세월도 흐른다.
한번 흘러내린 것들은 아무것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의 밑바닥을 따라 남에서 북으로 역류 하면서, 흐르는 남강은 북으로 북으로 흘러 올라가고 있다.
북녁땅은 변한게 없었다.
30수년전, 포대경으로 적진을 관측 했었던 그때의 북녁 산하 그대로였다.
민둥산, 나무전봇대위 2-3가닥의 엉성한 전선, 일률적으로 지어 놓은 민가와 군인들의 농사지원 모습, 도무지 내 눈에는 변한게 없다.
철책을 통과하면 "쾅" 하고 통문을 닫아버리고, 철커덕 열쇠로 통문을 잠가 버리는 무시무시한 금속성 소리와, 수색하는 민정경찰들의 긴장된 모습등, 어느것 하나 내 기억속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측 금강통문을 통과할때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절도있고 늠름한 우리 아들들의 모습과, 북측 통문을 통과할때 북측병사의 소총총구에 꽃혀있는 대검 칼끝이 뻔쩍일때, 우리병사와 북쪽병사의 모습이 대비 되어져 이념갈등의 현장을 느껴 보기도 했었다.
D일
캄캄해진 동래역에 집결해 늦게 도착한 버스에 오르자 말자, 시작한 폭탄주에 젖어가며 도착한 청도 휴계소의 넓은 주차장은 써늘한 찬 기운에 휘감겨 있다. 모두들 잠에 곯아 떨어지고 조용해진 차안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다. 철없던 시절 금강산에 갈 기회가 주어지면 금강산 일만이천봉, 봉봉마다 하켄을 다 박아 버리겠다고 큰 소리 쳐댄 이후 근 40년만에, 하켄은 박지 못하지만 금강산을 등반 한다는 설레임으로 가물거리는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D+1일
까만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달려 집결지 하진포에 도착해, 한참을 기다린뒤 발권을 받고 이동하여 남측 출입사무소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또 한참을 기다려 차량환승을 하고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금강통문을 통과해 비무장 지대로 들어섰다. 통일전망대를 뒤로하고 도로따라 깨끗하게 정돈된 가로등과 그 너머 일직선으로 뻗은 철도와 같이 계속 달렸다. 비무장지대 안의 가로등 색깔도 남은 청색, 북은 은색으로 구분해 놓았다. 비무장 지대를 벗어나 북측 통문을 거리낌 없이 스쳐 지나간다.
이젠 북녁땅을 달린다. 너무도 낯선 땅
생소하기만 한 풍광들,참으로 멀게만 전해오는 알수 없는 느낌들 속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오른손에 붉은 기를 들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북쪽 병사는 왜소한 체격에 검은 얼굴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도 큰 모자속, 북측 병사의 모습은 차라리 서러웠다. 차가운 표정의 북측 출입국 사무소 병사의 눈초리를 벗어나 온정각으로 향했다.
온정각의 숙소에 등반에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집결시키고, 곧 바로 세존봉 등반을 시작했다. 신계사를 거치고 목란관과 금강굴을 지날땐 까진, 우리의 평범한 산 계곡과 별 다를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으나, 무대바위를 지나고 구룡폭포 에서부터 금강산은 제 속살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푸른 물줄기들을 쉴 사이 없이 쏟아내는 소 에는 물감을 뿌려 놓은것 같은 푸른 색깔의 세찬 물줄기는 보는이의 눈을 시리게만 하고, 그 깊이가 13미터나 된다한다.
구룡폭포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관폭정에서 발열 도시락의 짜장밥으로 식사를 하고 정자 밑쪽의 유일한 곳 화장실로가니 1불,2불의 사용료가 적힌 안내판이 보이고 어김없이 안내원이 나타난다. 얼른 1불을 꺼내드니 "10불짜리 없습네까?" 한다. 얼핏 10불을 건내주면은 잔돈이 없다며 아홉번을 더 이용하라고 할것같은 생각이 언뜻 든다. 그래서 "10불짜리 없습네다." 하고 말투를 흉내내니 북측 안내원도 피식 웃어버린다.
세존봉까지는 아직 멀고 험하다 한다. 여기서 체력이 부담이 되는 사람은 하산하도록 권유를 한다. 언뜻 (신)춘식 생각에 그를 찾아보았다. 온정각에서 부터 하산길의 철사다리에 신경을 곤두 세우던 그였다. 조금은 부담감이 있는지 긴장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겐 항상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보살펴주는 옆지기님이 있다. 노래 잘하기로 소문나 있고 언제나 활발하고 밝은 모습의 옆지기님은 동환이 아빠 손을 붙잡고도 철계단길은 뛰어내려 올수있다.
사자목까지 오르막의 계곡은 협곡이었다. 좌우 수직길의 좁은길은 길게 이어져있다. 철난간들이 어지럽게 널려져있다. 아마도 폭우에 휩쓸려 버려진것 같다. 거친숨을 몰아쉬며 급경사 계곡길을 벗어나 올라온길을 내려다보니 눈이 많이 쌓이면 그대로 눈사태가 날 정도의 협소하고 경사도 급한 거친길이다. 좁은 평원같은 사자목을 헤쳐 나가고 직벽의 암벽길 따라 설치된 철사다리들을 힘겨웁게 올라서 마침내 세존봉 정상에 오른다. 넓다랗고 울퉁불퉁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정상이다. 비로봉이 바로 보이고 돌아서니 들쭉날쭉 삐쭉삐쭉 울퉁불퉁 뾰쪽뾰쪽한 연봉들의 잔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세어보지 않아도 집선연봉에서 알수있다.
경사도가 80도니 85도니 라고 하는 철계단의 하산길로 들어섰다. 구멍이 송송 뚫린 철판 밑으로 보이는 높이의 고도감과 120m 길이의 압도당해 팔다리가 떨려오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져 온다. 그런데 아득하게 멀게만 보이는 철계단의 맨끝에 벌써 내려서 있는 동환이 아빠는 빨리오라고 손짓을 해댄다. 너덜길의 지루한 하산길을 집선연봉을 바라보며 뛰듯이 내려와 합수목과 동석동계곡을 거쳐 평탄한 임도길로 들어서서 신계사 주차장까지 거침없이 내려섰다.
늦은 하산시간에 온천욕의 산후조리는 건너뛰고 숙소 공동샤워장에서 산후조리를 끝내고 외금강호텔 뷔페식당에서의 저녁식사는 성의없는 음식 준비에 실망스런 이름뿐인 만찬이었다.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무언가 허전한데 생맥주 집이 보이고 이심전심으로 자연스럽게 생맥주집으로 들어섰다. 몇번 인지도 모르는 건배와 "위하여, 위하여"를 외치며, 땅은 이북땅이지만 남쪽의 어느 호프집같은 분위기의 온정각 밤은 깊어만 갔다.
D + 2 일
세존봉 산행이 힘에 부쳤는지 수정봉산행은 우리 일행밖에 없다. 오늘은 오붓하게 산행을 즐길수 있을것 같다. 수정봉 주차장에 도착하니 북측 안내원은 대기하고 있다가 앉은번호로, 일상생활화된 인원점검을 하고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듯한 조용한 오솔길로 접어든다. 들머리부터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이다. 금방 물로 씻어낸듯한 슬라브형태의 와우폭포를 거치고 붉은색의 금강수정 표지석도 지나고 암벽과 암벽사이의 공간에 설치해놓은 철다리를 건너면서, 비둘기바위 자라바위등의 기기묘묘하고 독특한생김새에 취해 천천히 오르면 수정문에 닿는다. 금강산의 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수정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수정봉은 실제로 수정문에서 수정을 볼수있다.
수정문을 통과하면 정상까지 10분거리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수정봉에 올라선다. 고성항과 동해바다의 아름다움이 그림처럼 펼쳐져있다. 삼일포와 해금강의 모든 봉우리가 눈앞이다. 돌아서면 집선연봉의 뾰족뾰족한 봉우리 그 넘어 채하능선을 따르면 채하봉이고 우측으로 비로봉이 바로 보인다. C1소주를 꺼내들고 북측안내원과 돌주를 돌리고 있으니 북측 여안내원의 "반갑습네다." 노래 소리에 잔돌리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우리의 자랑 (서)석조형의 노래소리는 동해바다까지 퍼져울린다.
하산은 올라온길을 따라 원점회귀함으로써 수정봉 산행은 끝니아고 옥류관으로 바로달렸다. 메밀차와 냉면의 맛이 일품이었다. 도우미들의 밝은 미소와 깔끔한 서비스에 여유롭게 평양소주를 곁들인다. 기분좋은 오찬을 마치고 바로 온천욕으로 이틀간의 산행피로를 말끔하게 씻어내었다. 몸이 가뿐해지니 또 생각나는게 있다. 어느새 실세 총무는 생맥주집을 확보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소세지와 베이컨의 맛과 생맥주의 맛이 어우러져 몇번의 "카악 카악" 과 "위하여"를 외친지도 모르고 퍼부었다.
16:00 정각 온정각을 출발하고, 매서운 눈초리를 퍼부어 대는 북측 출입 사무소의 병사는 여전히 올때와 다름없이 무표정한 얼굴이다. 큰소리로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내자 굳은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번진다. 북측 통문, 북측 비무장지대, DMZ, 남측 비무장지대, 남측 통문을 거침없이 달려 화진포휴게소에 도착. 부산에서 타고온 차량으로 환승해 중부 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타고 대구에서 대동으로 동래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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