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낙영산-도명산-화양구곡 : 2014. 8. 9. 남산산악회
오늘 산행은 산 자체보다는 화양구곡(華陽九曲)에 포인터가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의 화양구곡(華陽九曲)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이름의 횟수가 최고 많다는
우암 송시열이 은퇴 후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화양동계곡(화양구곡)은 선유동계곡(선유구곡), 쌍곡구곡과 함께 괴산팔경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산행 후 하산을 하면서 화양구곡 중 제9곡인 파천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8곡을 감상할 수 있었다
10:40 공림사(公林寺) 주차장 출발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공림사 주차장
부산은 태풍 '할롱'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비가 내렸는데 이곳은 화창하기만 하다
지난주 예약했다가 태풍때문에 취소한 괴산의 군자산 산행을 못간 것이 못내 아쉽다
공림사(公林寺)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의 말사이다
11;10 낙영산 갈림길 사거리
사거리에서 도명산은 직진하는 내리막길로 진행해야 하고
낙영산은 오른쪽 500m 거리에 있어 낙영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11:25 낙영산(落影山) 정상 (746m)
이 낙영산은 정상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는데 예전에는 헬기장이 있는 685봉을 낙영산 정상으로 여겨왔지만
국립지리원에서는 지금의 이 위치를 낙영산 정상으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예전에 있던 정상석을 그대로 옮겨두었는지 정상석의 해발표기는 684m로 되어 있다
공림사 출발 45분만에 낙영산 정상 도착
11:40 다시 되돌아 온 갈림길 사거리
이제는 오른쪽 내리막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집채만한 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많은 나무버팀목들 ~~~
11:55 사거리 안부
도명산 정상까지는 이제 600m 밖에 남지 않았다
저 바위암벽이 있는 곳이 정상이다
도명산 정상은 크고 작은 다섯개의 바위가 하나로 모여 정상을 이루고 있다
정상석은 그 바위 암봉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는데
정상에서 바로 진행하면 첨성대가 있는 화양3교 방향으로 단축해서 하산하지만
대신 나머지 몇몇 화양구곡을 보지 못하게 되고
오던 길을 조금 되집어 내려가서 학소대 방향으로 하산을 하면
마애삼존불을 비롯한 화양구곡의 비경들을 오롯히 감상하면서 산행날머리인 버스주차장까지 갈수가 있다
12:20 도명산(道明山) 정상 (산행시간 : 1시간40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비좁아 한참동안 줄을 서서 눈치를 보다가 겨우 한컷을 찍을 수 있었다
道明山의 높이도 650m인데 643m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도명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속리산의 주능선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
속리산 주능선을 보니 새삼 이곳 도명산이 속리산국립공원 구역에 속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12:50 하산 시작
도명산 정상 아래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학소대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12:55 마애삼존불 도착
높이 20~30m나 되는 수직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을은 3개인데
가장 큰 마애불은 그 마애불의 길이만 14m에 달한다고 한다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마애불들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속세를 내려다 보고 있다
마애불 부처의 발끝 부분에서는 시원한 물이 샘솟고 있다
12:30 학소대교 / 이제 산행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다리를 건너면 산길은 끝나고
왼쪽으로 화양계곡을 끼고 길을 따라 가면서 화양구곡(華陽九曲)들을 감상할 수가 있고
제8곡인 학소대는 이 다리 중간에서 조망할 수가 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화양계곡(華陽溪谷)
계곡 가운데 있는 널따란 바위에서 신선들이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있는 제9곡 '파천'은
이 계곡 상류에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 답사를 포기하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나머지 8곡들을 둘러보게 된다
제8경인 학소대(鶴巢臺)
용이 누워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제7곡 와룡암(臥龍岩)
제6곡인 능운대(凌雲臺)는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듯 하다고 '능운대(凌雲臺)'라고 한다
제5곡 첨성대(瞻星臺)
큰 바위가 첩첩히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서 별을 관찰하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하여 '첨성대'라고 한다
'암서재(巖棲齋)'와 제4곡인 '금사담(金沙潭) '
암서재(巖棲齋)는 우암 송시열의 서재로 우암이 말년을 보내면서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고
사후에는 제자들에 의해 강학장소로 사용했던 곳이며
암서재 앞 계곡물인 금사담(金沙潭)은 거울처럼 맑은 담 바닥에 금빛 모래가 널려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폭은 넓지 않지만 수심이 깊어
우암이 배를 띄워 건너편에 있는 초당(지금의 화양서원)과 암서재를 오갔다고 하는 곳이다
화양서원 묘정비
우암의 초당이 우암 사후에 임금의 사액을 받아 서원이 되었으나
철종 때 폐쇄당하고 묘정비도 땅에 묻히게 되었으나
오랜 세월 버려져 있다가 1970년대에 와서 발굴, 복원되었다고 한다
14:35 화양서원(華陽書院)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3천번이나 올랐던 인물로서 조선 중기 성리학을 집대성한 학자이고,
후에 효종이 된 봉림대군의 사부인 우암 송시열은 60세에 이곳 화양동으로 왔다
1666년 8월에 지금의 만동묘 자리에 화양계당(華陽溪堂)이라는 집을 짓고, 이곳에서 8년을 머물렀고
1674년에 유배돼 떠났다가 1680년에 70세가 넘어 돌아와 말년을 보냈다
사후에 제자들이 그 자리에 서원을 설립해 지금의 규모가 됐지만
본래의 모습은 나무껍질로 지붕을 이은 다섯칸짜리 소박한 집이었다고 한다
만동묘(萬東廟)는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명나라의 신종과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던 사당이다
이때문에 사대주의에 빠져 명나라를 떠받들던 곳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 원군을 보내준 데 대한 의리를 지키는 공간이라는 평가도 있다
제3곡인 읍궁암(泣弓岩)은 화양서원과 암서재 사이에 있는 바위로
효종 서거 후 관직을 거절하고 이곳에 온 우암은
이곳 읍궁암에서 효종임금을 그리며 매일 새벽 엎드려 곡을 했다고 한다
泣弓巖의 궁자는 '활弓'자로 활처럼 엎드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바위의 둥그렇게 파인 곳이 우암의 눈물이 고였던 자리인가?
제2곡인 운영담(雲影潭)은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루고 있는데
그 물이 너무 맑아 구름의 그림자마저 맑게 비친다고 하는 곳이다
15:00 화양주차장 도착/ 산행 종료 (총 소요시간 : 4시간 20분)
주차장에서 2~3분 거리에 경천벽이 있다고 해서 버스에 배냉을 내려두고 답사에 나섰다
화양구곡의 제1경인 경천벽(擎天壁)은
계곡 가장자리의 층암절벽이 깎아지른듯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듯 하다고 이름지어졌다